대학 공동체에 이메일…"스파이 활동 관여한 중국계는 극소수""근거 없는 의심과 걱정으로 유독한 환경 조성하지 않도록 주의해야"미국 명문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라파엘 레이프 총장이 미국 정부를 겨냥해 중국의 첨단기술 불법 취득을 막기 위해 중국계 연구자들에 대해 '유독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26일 미국의 CNBC, 중국의 신화통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레이프 총장은 대학 교직원과 학생·동문 등 MIT 공동체에 보낸 이메일에서 중국계 연구자들에 대한 유독한 환경 조성이 미국에도 해를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레이프 총장은 이메일에서 "학문적 스파이 행위의 위험성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으며, MIT는 그런 위반 행위를 막기 위해 신중한 예방 정책을 취했다"고 밝혔다.MIT는 미국 정부의 제재 리스트에 오른 화웨이(華爲) 및 중싱통신(中興通訊·ZTE)과 연구 계약을 단절한 미국의 주요 대학 가운데 한 곳이다.MIT는 지난 4월 스탠퍼드대, UC 버클리대, 프린스턴대가 화웨이와 연구 계약을 단절하자 그 뒤를 따랐다레이프 총장은 "그러나 이러한 위험들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근거 없는 의심과 걱정 때문에 유독한 환경을 조성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한다"면서 스파이 활동에 관여한 중국계 학자나 연구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그러면서 그는 "대학의 동료 교수들, 박사후연구원들, 연구보조진, 학생들이 단지 중국계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조사 받고, 낙인을 찍히고, 불안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중국어를 사용하거나 중국계인 동료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레이프 총장은 MIT 출신으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인 고(故) 이오 밍 페이(貝聿銘)를 거명하면서 "그는 평생을 의식적으로 중국어에 뿌리를 둔 삶을 살았지만, 그가 10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보스턴 글로브는 그를 '당대에 가장 뛰어난 미국인 건축가'라고 평했다"고 강조했다.레이프 총장은 자신도 이민자인 나에게 공간을 내어준 미국의 탁월한 제도 덕분에 MIT 총장에 오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레이프 총장의 이런 입장 발표는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첨단기술의 중국으로의 유출을 막기 위해 미국에 유학 온 중국인 학자들과 유학생뿐만 아니라 미국계 중국인 학자들을 대상으로 과도한 단속과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미국 학계 일각의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2012년 이래 MIT 총장직을 맡은 레이프 총장은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1979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했다./연합뉴스
“긍정은 언제나 길을 찾는다(Optimism always finds a way).”세계적인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미국 UCLA 기계항공공학과 교수의 인생 모토다. 이 글귀는 길거리 간판, 공항, 버스 등 로스앤젤레스(LA)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학과 지역사회가 그의 눈부신 연구성과에 보내는 헌사다.미국 최초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찰리’, 재난현장 구조로봇 ‘토르’ 등을 개발해 세상을 놀라게 한 홍 교수가 기상천외한 로봇을 또 내놨다. 이번엔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처럼 1m가량 점프하고, 태권도 발차기로 송판을 격파하는 4족 보행로봇 ‘알프레드2’다. 그가 개발한 액추에이터(모터 감속기 등으로 구성된 부품군)를 적용했다.홍 교수는 오는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 주최하는 ‘스트롱코리아 포럼 2019’에 참석해 ‘로봇은 꼭 사람처럼 생겨야 하나요?’를 주제로 강연한다. 주체할 수 없는 흥과 에너지로 가득한 그를 20일 서울에서 만났다.아틀라스는 ‘화학적 폭발’로 백텀블링홍 교수는 “기존 모터와 감속기로는 (미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처럼) 뛰는 로봇을 절대로 만들 수 없다”며 “완전히 새로운 액추에이터를 설계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특수 전자기 액추에이터, 일명 ‘베어(BEAR)’다. 베어는 로봇 팔다리에 탄력을 주고 힘 조절이 가능하도록 한 ‘마법의 인공근육’이다.알프레드2는 홍 교수가 개발한 베어를 처음으로 장착한 로봇이다. 베어 덕분에 알프레드2는 토끼처럼 뛰거나 강아지처럼 걷고, 다리를 ‘V’자로 치켜올려 폴짝 뛴다. ‘파쿠르(장애물 뛰어넘기 훈련)’를 하고 백텀블링하는 아틀라스 못지않다.홍 교수는 세계적으로 베일에 싸인 아틀라스의 비밀을 한국경제신문에 공개했다. “원래 유압식 액추에이터는 실린더 내 기름을 밀어올려 힘을 내죠.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기름을 ‘화학적으로 폭발’시키는 유일무이한 액추에이터를 개발했습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대표인) 마크 레이버트가 귀띔해줬는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이상은 안 알려주더라고요. 이건 언론에 처음 말씀드리는 겁니다.”공대 학부생들 ‘신선한 사고’ 독려해야홍 교수는 미국 태생이지만 초·중·고를 모두 한국에서 나왔다. 고려대 89학번으로 입학했으나 열악한 환경에 실망해 미국으로 떠났다.“로봇을 연구하고 싶다”며 교수연구실 문을 두드렸으나 “학부생이 무슨 연구냐”며 문전박대당한 뒤 크게 낙담했다. 이 경험은 ‘학부생이 먼저’라는 그만의 철학을 갖는 계기가 됐다. 홍 교수는 “(대학원생보다) 학부생에게 좀 더 관심을 두고 이들의 창의력을 폭넓게 지원해야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그는 존 유이커 미 위스콘신대 교수에게서 기계공학의 기본을 배웠다. 또 유이커 교수의 제자인 레이먼드 시프라 교수가 있는 퍼듀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땄다. 홍 교수는 “요즘도 내 제자들과 함께 유이커, 시프라 교수와 자주 만난다”며 “주변에선 ‘미국 로봇 가문 4대(代)’라고 한다”고 했다.홍 교수는 박사과정 직후 버지니아공대의 러브콜을 받아 옮긴 뒤 내리 11년을 일했다. 로멜라(로봇공학연구소) 명칭이 탄생한 곳도 여기다. 2007년 4월 버지니아공대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 때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기지(奇智)를 발휘한 일화는 유명하다. 로봇 눈에 있는 카메라를 뽑아 곳곳에 던져놓고, 프로그램을 급조해 동영상을 찍으며 어디로 대피할지 학생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이는 당시 현지 언론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꽃길을 주로 걸었을 법한 홍 교수에게도 큰 시련이 있었다. 2013년 말 UCLA로 옮기려는 그를 붙잡기 위해 버지니아공대 측은 그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제안했다. 홍 교수는 그러나 “이미 UCLA 측과 계약이 끝났다”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괘씸죄에 걸린 홍 교수는 찰리, 토르 등 그동안 개발한 로봇과 장비, 인력 모두를 빼앗겼다.그가 개발한 시각장애인 전용 자동차 ‘브라이언’도 버지니아공대에 두고 나와야 했다. 2011년 선보인 브라이언은 이용자가 앞을 못 보더라도 특수 장갑과 좌석 등을 활용해 수동으로 운전할 수 있게 한 자동차다. 워싱턴포스트 1면을 장식한 이 자동차는 홍 교수가 떠난 뒤 버지니아공대에 ‘박제’됐다. 그 누구도 홍 교수를 대체해 연구를 지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엄청난 위기였지만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백지상태에서 새 연구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며 “어떤 불행한 사건에서도 언제나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휴머노이드가 아니어도 좋다UCLA로 이적한 뒤 그가 내놓는 로봇들은 말 그대로 ‘괴랄(괴상하고 발랄하다란 뜻의 신조어)’해졌다. 헬륨 풍선에 마치 소금쟁이 같은 다리를 붙인 로봇 ‘발루’, 침팬지처럼 두 발 또는 네 발로 걷고 뛰는 알프레드2,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기어오르는 6족 거미로봇 ‘실비아’ 등이다. 이전에 그는 휴머노이드를 주로 개발했다. 홍 교수는 “휴머노이드는 느리고, 무겁고, 비싸고, 잘 넘어진다”며 “로봇은 사람 모양으로 설계할 필요 없이 사람을 위해 만들면 그만”이라고 했다.■데니스 홍 교수는…美 최초의 휴머노이드 개발한 로봇 공학자미국 최초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찰리’를 개발한 세계적인 로봇공학자다. 현지에서 ‘달 착륙에 버금가는 성과를 낸 과학자’ ‘21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으로 불린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미 버지니아공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찰리를 비롯해 재난현장 인명구조용 휴머노이드 ‘토르’, 로봇공학 교육용 휴머노이드 ‘다윈’, 시각장애인 전용 자동차 ‘브라이언’ 등을 만들었다. 2014년 UCLA로 옮긴 뒤 ‘로봇은 인간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철학에 따라 기상천외한 형태의 작업용 로봇(나비·실비아·발루·헥스·알프레드 등)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1971년생△1991년 고려대 기계공학과 3학년 중퇴△1994년 미국 위스콘신대 기계공학과 졸업△1999~2002년 미국 퍼듀대 기계공학 석·박사학위 취득△2003년 미국 버지니아공대 로봇메커니즘연구소(로멜라) 소장△2007년 미국국립과학재단(NSF) 젊은과학자상, 2011년 타임지 최고 발명품상 수상△2014년~ UCLA 로멜라 소장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대학이 직면한 재정 문제에 대학 스스로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돈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국내 대학들의 모습에 서울의 한 경영학과 교수가 한 말이다. 대학들은 등록금 동결, 학령인구 감소, 입학금 폐지 등으로 인해 ‘대학 재정에 한계가 왔다’고 불만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부 보조금만 바라볼 뿐 대학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는 데는 노력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다. 국내 대학들과 달리 하버드, 스탠퍼드 등 해외 유수 대학들은 막대한 규모의 기부금을 활용한 투자수익으로 매년 1조원 이상을 연구비 등으로 쓰고 있다.해외에선 기금 운용 수익만 수조원세계에서 가장 큰 대학 기금을 보유한 미국 하버드대의 기금 운용액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392억달러(약 45조원)에 달했다. 기금을 운용하는 하버드매니지먼트컴퍼니(HMC)는 지난해 10%의 수익률을 올렸다. 2017년에도 8.1%의 수익률을 올려 웬만한 펀드 수익률을 앞섰다.매년 조단위 수익을 내는 HMC는 지난해 18억달러(약 2조원)를 하버드대에 운영예산으로 지급했다. 이는 지난해 하버드대 전체 운영비용 50억달러의 36%에 해당한다. 하버드대는 2018년도 회계 보고서를 통해 “기부금 운용 수익은 하버드대 총자산이 440억달러에서 470억달러로 7%나 늘어날 수 있었던 주요인으로서 대학 교육과 연구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스탠퍼드대도 대규모 기부금 투자 수익을 통해 매년 1조원 이상의 대학 운영비를 기금에서 충당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280억7000만달러(약 32조원)의 기금을 운용하는 스탠퍼드대 산하 스탠퍼드매니지먼트컴퍼니(SMC)는 23명의 투자팀과 52명의 지원 인력으로 지난해 11.3%의 기금 운용 수익률을 올렸다. SMC가 처음 설립된 1991년부터 따지면 연평균 수익률은 11.7%에 달한다. 막대한 수익률을 바탕으로 SMC는 지난해 12억달러(약 1조3700억원)를 대학 운영비로 지출했다. 이는 지난해 스탠퍼드대 전체 운영비용의 2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공대 교수는 “국내 대학은 너도나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지만 막대한 기금 수익을 연구비에 쏟아붓는 하버드대, 스탠퍼드대와의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국내 대학 기금 운용은 ‘걸음마’ 수준기금 운용을 통해 자체적으로 재정을 확충하는 해외 대학들과 달리 국내 대학들의 기금 운용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해 교육부와 함께 전국 340개 대학을 대상으로 기금·자산 운용 자료를 요청한 결과 자료를 제출한 53개 대학 중 기금운용 관련 조직 및 투자지침서(IPS)가 마련되지 않은 대학이 22.6%(12곳)에 달했다. 정기예금 외엔 자금을 투자하는 곳이 없다보니 운용 자체가 불필요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기금 규모 자체도 해외 대학에 비해 턱없이 적다. 2017년 기준 전국 사립대 적립금을 모두 합친 금액은 7조9335억원에 불과했다. 미국 하버드대 기금 운용액(약 45조원)의 5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기금을 조성할 기부금 모금액도 해외 대학과 비교해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다. 하버드대는 2017년 6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년 동안 14억달러(약 1조6340억원)의 기부금을 받았다. 국내에선 2017년 기준 172개 4년제 일반 사립대의 기부액을 모두 합쳐도 4401억원에 불과했다.“투자 수익률 높일 방법 찾아야”대학 기금운용위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보니 정기예금 등 원금 보장성 상품에 주로 투자하는 극도의 ‘안정성’ 추구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증권 등 변동성이 있는 자산에 투자했던 대학들의 실적이 부진해지면서 다른 대학들도 투자를 보수화하는 추세다.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2017년 3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일반대학 법인 42곳, 전문대학 법인 20곳의 증권 투자 평균 수익률은 각각 0.8%, -9.7%에 그쳤다.수도권의 한 사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학 스스로가 전문성을 갖출 수 없다면 일임투자 비율을 높이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대부분의 대학은 거의 모든 기금을 정기예금에 넣어두고 있다”며 “등록금 규제로 대학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금 수익을 높이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불평만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정의진/황정환/박종관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