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천국제공항을 전자상거래 물류 허브로 키우겠다고 했지만 농림축산식품부의 검역 규제 때문에 배송 차질이 ?어져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을 떠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인천본부세관 특송물류센터. /한경DB
정부가 인천국제공항을 전자상거래 물류 허브로 키우겠다고 했지만 농림축산식품부의 검역 규제 때문에 배송 차질이 ?어져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을 떠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인천본부세관 특송물류센터. /한경DB
좌초 위기에 놓였던 ‘글로벌 전자상거래 물류센터(GDC)’ 사업이 기사회생했다. 정부가 사업의 족쇄였던 검역 규제를 전면 완화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물류 허브의 꿈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는 한국경제신문 보도(6월 18일자 A5면) 이후 정부가 검토한 끝에 ‘과잉 규제’로 결론 내고 완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9일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GDC에 반입되는 식물원료 물품, 동물원료 가공품에 대해 검역증명서 첨부를 면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GDC는 아마존 등 해외 전자상거래업체의 아시아 주문 물량을 한국에서 받아 중국 일본 등에 배송하는 신(新)물류사업이다. 일종의 해외 직구(직접구매) 중계다. 작년 4월 사업 추진을 공식화해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 등 국내 3대 물류기업이 뛰어들었다. 하지만 동·식물 원료 물품에 대해 현장 검역은 물론 수출국 검역증명서 제출까지 의무화한 규제 탓에 표류했다. 제품 배송이 차질을 빚었고, 해외 거래 업체들이 한국 시장 철수를 검토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최근 정부가 규제 개선 검토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업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다음달부터 해외 거래 업체의 배송 주문 물량이 40%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CJ 롯데 등은 시설 추가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아마존 직구상품, 인천공항 거쳐 中·日 배송 쉬워진다
'亞 물류 허브' 막던 규제 철폐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지난 2월 ‘글로벌 전자상거래 물류센터(GDC)’ 사업에 착수했지만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한 달 배송 물량이 수십 만 건은 돼야 정상인데 월평균 1000건 정도밖에 안 된다. “GDC를 통해 한국을 아시아의 물류 허브로 만들자”는 야심 찬 목표가 무색할 정도다.
[단독] '亞 물류허브 꿈' 가로막던 과잉 검역 규제 확 풀린다
배송 물품에 대한 까다로운 검역 규제의 영향이 컸다. 규제에 대한 우려 때문에 거래 상대방인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오플닷컴이 롯데에 물량을 제대로 주지 않은 것이다. 기업 내부에서 ‘사업을 철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GDC는 해외 전자상거래업체의 아시아 주문 물량을 한국에서 받아 중국 일본 등 주변국으로 배송해주는 해외 직구(직접구매) 중계 사업이다. 하지만 정부는 국내로 반입되는 제품 가운데 말린 과일, 씨앗, 분유 등 동·식물 원료 물품에 대해 현장 검역은 물론 수출국 검역증명서까지 내라고 했다.

유통업체가 수많은 제품의 검역증명서를 일일이 받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내에 잠깐 거쳤다가 해외로 나가는 물품에 까다로운 기준을 들이대는 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상황이 급반전된 건 지난 7월이었다. 언론에서 “GDC 규제는 과잉”이란 지적이 나오자 규제 완화에 미온적이던 정부가 “전향적으로 검토해보자”며 태도를 바꿨다. 국무조정실과 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은 깊이 있는 논의 끝에 최근 식물성 물품의 규제를 완화하는 ‘식물방역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며 규제 개선을 공식화했다. 다음달부터 식물성 물품은 검역증명서가 면제된다. 동물성 물품은 내년 초에 관련 규정을 정비할 계획이다.

규제 개혁의 힘은 컸다. 오플닷컴은 다음달부터 롯데에 보내는 물품 물량을 월 3만~6만 건으로 늘리기로 했다. 규제로 인한 불확실성이 사라져 ‘물건을 믿고 맡겨도 되겠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올 1월부터 GDC를 운영 중인 CJ대한통운 관계자도 “다음달부터 거래 업체인 미국의 아이허브가 맡기는 물량이 한 달 32만~33만 건에서 40만 건 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두 회사를 합쳐 배송 물량이 40%가량 증가하게 됐다. CJ는 규제 완화로 GDC 분야 매출이 두 배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추가 투자 계획도 나오고 있다. 현재 1122㎡ 규모의 GDC를 운영하고 있는 롯데는 내년 약 4000㎡의 물류 창고를 증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CJ는 시설 증축을 검토 중이다. 규제 완화로 해외 기업의 추가 유치가 원활해지고 이에 따라 물류 창고가 추가로 필요할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GDC 사업은 CJ와 롯데, 한진, 에어시티 등 4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데 정부의 규제 완화로 추가 투자 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계에서는 “GDC 규제 완화는 정부가 열린 태도를 갖는 것만으로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GDC 사례처럼 신산업 활성화를 가로막는 규제가 아직 많다”며 “신산업에 대해 일단 자유롭게 풀어주자는 자세로 나서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의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