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한 데 따른 불똥이 경제계 전반으로 튈 가능성이 높아졌다. 야당의 강력 반발로 정국이 급랭하면서 20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파행 수순을 밟고 있어서다.

탄력근로제 확대,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완화 등 경제계가 강력히 요구해온 법률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다. 미·중 무역전쟁, 일본 수출규제, 글로벌 경기둔화에 대응하기도 버거운 경제계에 ‘정치 리스크’까지 더해지는 셈이다.
< 신임 국무위원 임명 >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앞줄 왼쪽 여섯 번째) 등 신임 국무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조 장관의 임명과 관련해 “의혹만으로 임명을 안 하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신임 국무위원 임명 >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앞줄 왼쪽 여섯 번째) 등 신임 국무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조 장관의 임명과 관련해 “의혹만으로 임명을 안 하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정국 급랭…국회 ‘올스톱’되나

자유한국당은 9일 조 장관 임명에 반발해 총력투쟁에 나서겠다며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바른미래당도 야권 연대를 통한 투쟁을 예고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야권이 정기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할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야권이 ‘실력행사’에 들어가면 국정운영에 상당한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당장 내년 ‘나라 살림’이 담긴 예산안과 세법개정안 처리가 불투명해진다. 여야는 당초 △9월 17~19일 교섭단체 대표연설 △23~26일 대정부 질문 △9월 30일~10월 19일 국정감사 △10월 22일 2020년도 예산안에 대한 정부 시정연설을 듣기로 지난 2일 합의했다.

한국당이 강력한 장외투쟁을 예고한 만큼 모든 일정이 줄줄이 늦춰지고 각종 민생 법안처리도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한국당은 정기국회 보이콧 외에도 해임건의, 국정조사, 특별검사 수사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태세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간 극한 대결이 조기 총선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고 진단했다.
'조국 블랙홀'에 정국 視界제로…기업 "정치가 불확실성만 키운다"
통과 불투명해진 경제 현안법

국회가 파행으로 치달으면 이번 정기국회를 ‘마지막 기회’로 추진해온 수많은 규제 개혁법안도 함께 잠들게 된다. 내년 4월 총선으로 새로운 국회가 들어서면 20대 국회 때 발의된 법안은 자동 폐기되기 때문이다.

탄력근로제 확대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안이 대표적 예다. 여야는 “기업 부담을 줄여달라”는 경영계의 요구에 따라 탄력근로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고, 최저임금위원회를 최저임금구간설정위원회와 최저임금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협의할 계획이었다. 기업들이 ‘과도한 규제’로 꼽은 화관법 및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을 일부 완화하는 방안도 논의 테이블에 오를 예정이었다.

이 밖에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더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정하는 내용의 ‘빅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개정안을 비롯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수소경제법·수소산업육성특별법 △벤처투자촉진법 △유턴기업지원법 등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여야가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는 극한대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혁신성장 및 경제활력을 위한 법안 개정이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우려했다.

“정치 리스크까지 더해졌다”

기업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번 국회에서 바뀔 것으로 기대했던 노동(탄력근로제 확대 및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및 환경(화관법·화평법) 관련 법안 개정이 또다시 무산될 가능성이 생겨서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국회의원들이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경제·민생현안만큼은 이번 국회에서 해결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국내 기업들은 이제 미·중 무역분쟁, 한·일 갈등 등 ‘대외 리스크’와 친노동·반기업정책 등 ‘정책 리스크’에 이어 ‘정치 리스크’까지 감안해야 한다는 불만도 토로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글로벌 시장에서 해외 경쟁사들과 전쟁하기도 벅찬데 나라 안 정치 불확실성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라며 “정치가 또다시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오상헌/김소현/장창민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