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 상품 40만개 쿠팡서도 판다…'백화점 빅3' 중 첫 입점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은 유통업계 먹이사슬의 최상단 ‘포식자’였다. ‘유통 빅3’ ‘유통 공룡’으로 불리는 이들을 대적할 외부의 상대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규제를 받았다. 새로 매장을 내는 것은 훨씬 까다로워졌다. 2012년 시행된 유통산업발전법은 유통 공룡을 그물에 가둬두는 역할을 했다.

그사이 새로운 포식자가 나타났다. 쿠팡이다. 이 포식자는 기존 유통 대기업과 다르게 덩치를 키웠다. ‘로켓배송’ ‘초저가’ 등 새로운 무기를 들었다. 쿠팡은 손발이 묶인 유통 공룡의 살점을 뜯어 먹으며 성장했다. 쿠팡의 공격에 유통 공룡은 위협을 받았다.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뿐이 아니다. 백화점도 손님을 빼앗겼다. 결국 유통 빅3 중 현대백화점이 쿠팡과 손을 잡기로 결정했다.

현대百, 쿠팡과 손잡은 첫 ‘유통 빅3’

현대백화점 상품 40만개 쿠팡서도 판다…'백화점 빅3' 중 첫 입점
쿠팡에서 ‘현대백화점’을 검색하면 현재 40만 개 넘는 상품이 뜬다. 현대백화점이 최근 쿠팡에 ‘판매자’ 등록을 하고 쿠팡에서 상품을 팔기 시작한 데 따른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자체 온라인몰 ‘더현대닷컴’을 쿠팡과 연계했다. 소비자가 쿠팡에서 현대백화점 상품을 주문하면 현대백화점 입점 브랜드가 물건을 보내준다. 쿠팡이 물건을 구입해 소비자에게 보내주는 ‘로켓배송’과는 형태가 다르다. 현대백화점 상품이 판매되면 쿠팡은 수수료를 떼간다. 현대백화점은 쿠팡에서 하루 2000만~3000만원어치를 파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화점 가운데 쿠팡에 입점한 곳은 현대백화점뿐이 아니다. 갤러리아백화점 AK플라자 NC백화점 대구백화점 등은 앞서 쿠팡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유통 빅3’ 가운데 쿠팡과 손잡은 것은 현대백화점이 처음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대백화점이 자신들의 온라인몰(더현대닷컴) 활성화가 더디자 차라리 쿠팡에 입점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도 이를 인정했다. 회사 관계자는 “더 많은 소비자가 현대백화점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쿠팡에 들어갔다”며 “쿠팡뿐 아니라 다양한 온라인 업체와 제휴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롯데 신세계는 아직…

롯데와 신세계는 “쿠팡 입점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들은 계열사 온라인몰을 하나로 통합해 자체 영향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를 통해 쿠팡을 힘으로 누를 수 있다고 판단하고 밀어붙이는 중이다.

현대백화점은 이들과 전략이 다르다. 현대 경영진은 “유통은 선발자가 이익을 크게 보는 시장이 아니다. 사업성이 검증된 영역에 들어가 새로운 방식으로 경쟁해도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백화점은 물론 홈쇼핑, 면세점, 아울렛 모두 후발주자인 이유다. 그래도 회사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도 마찬가지다. 굳이 앞서 가거나 무리하게 경쟁하려 하지 않는다. 현대백화점은 모두 적자를 내고 있는 온라인에 대규모 투자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 신세계가 온라인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면 그때 자체 온라인에 큰 투자를 할 것”으로 내다봤다. 롯데와 신세계처럼 그동안 온라인에 큰돈을 쏟아붓지 않은 것도 현대백화점이 쿠팡 입점을 결정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할인쿠폰·타임특가 등으로 공세 확대

쿠팡의 공세는 올 들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최근 이례적으로 할인 쿠폰을 뿌리기 시작했다.

쿠팡은 그동안 쿠폰 지급에 소극적이었다. 경쟁사와 사업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간 쿠폰 발급을 많이 했던 곳은 G마켓, 11번가 등 주로 오픈마켓이었다. 이들은 판매자와 구매자 간 연결만 해주기 때문에 쿠폰을 발급해도 상대적으로 부담이 작다. 할인 쿠폰 비용 일부, 혹은 대부분을 판매자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쿠팡은 매출 대부분이 직매입에서 일어난다. 쿠팡이 판매할 상품을 제조사에서 직접 구입한다. 쿠폰을 발급하면 할인액 대부분을 쿠팡이 부담해야 한다. 그럼에도 쿠팡이 대규모 쿠폰 행사에 나선 것은 경쟁자들이 위축된 틈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최근 G마켓, 11번가 등이 수익성 개선을 위해 쿠폰을 거둬들이자 더 공세적이 됐다는 얘기다.

쿠팡은 또 유료회원(로켓와우)을 대상으로 ‘타임특가’ 행사도 시작했다. 발마사지기, 전기그릴 등을 두 시간 단위로 정상가 대비 최대 70~80% 할인한 가격에 내놨다. 타임특가도 쿠팡에선 보기 힘들었던 마케팅이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특가 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위메프, 티몬의 영역이었다. 타임 마케팅이 소비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자 쿠팡도 따라하기 시작했다. 경쟁사를 별로 의식하지 않던 쿠팡이 더 공격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