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장비업체 베셀은 2013년 매출이 500억원을 넘었다. 중국 시장으로 판로를 넓힌 덕분에 지난해 매출은 758억원으로 뛰었다. 액정표시장치(LCD)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디스플레이 장비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회사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회사가 성장 가도에 들어서자 서기만 대표(54)의 ‘공격본능’이 살아났다. 다소 생뚱맞게 2인승 경량항공기 개발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미국이 주도하는 경량항공기 시장에 국내 중소기업의 도전은 무모해 보였다. 서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회사를 한쪽 방향으로만 키우는 게 더 큰 리스크라고 판단했다. 4년간의 연구 끝에 2017년 말 ‘KLA(Korea Light Aircraft) 100’의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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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성공비결

서 대표는 맨손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비의 국산화를 이뤘다. 경량항공기도 제조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영업맨으로 쌓은 노하우와 신뢰 덕분이다. 서 대표는 “베셀은 영어단어(vessel)로 ‘대형 선박’ ‘큰 그릇’을 뜻한다”며 “회사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재를 모아 5대양 6대주를 누비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7남매 중 장남인 서 대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83년 부친이 작고했다. 집안을 이끌어야 하는 부담을 느꼈다.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곧바로 입대(육군 9사단 백마부대)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군대에서 배운 교훈이다. 창업한 뒤 경영방침을 ‘할 수 있다(We make it possible)’로 정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제대 후 잠시 보석 관련 사업을 했다. 수익이 꽤 짭짤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뒤늦게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일본전자대 전자공학과에서 로봇을 전공했다. 당시 인공지능(AI)과 관련된 로봇 소프트웨어는 한국에선 낯선 분야였다. 만학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한 번도 좌절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1993년 어렵게 학업을 마쳤다. 장남인 그는 당시 심부전증 등 지병이 있던 모친 병간호를 위해 귀국했다. 일본통이라는 이점을 살려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당시 삼성 LG 등 대기업이 반도체 사업에 막 뛰어들 때였다. 반도체 관련 장비를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는 중소기업에서 수입 업무를 맡았다. 1996년 디스플레이 장비업체로 이직해 국내 대기업으로부터 100억원짜리 장비 계약을 따냈다. 영업과 CS(고객만족) 직원 5명으로 팀도 꾸렸다. 서 대표는 “회사를 나가기 1년 전부터 경영진이 만류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창업을 향한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디스플레이 장비 국산화

서 대표는 ‘한국 기술로 세계적인 회사를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2004년 6월 베셀을 설립했다.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디스플레이 장비 국산화에 나섰다. 서 대표와 거래했던 일본 업체들이 도와줬다. 서 대표가 국내 대기업(수요자)과 새 장비를 납품해야 하는 일본 업체(공급자)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가량을 고생한 뒤 공장을 짓고 디스플레이 장비를 생산하게 됐다. 대표장비인 인라인시스템은 각각의 공정장비를 자동 생산라인으로 연결해주는 설비다. 시스템당 50억~100억원에 달하는 고가다. 고객 맞춤형으로 제작하다 보니 제품 수주에서 납품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린다.

서 대표는 경쟁이 치열한 국내 시장 대신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중국은 디스플레이 시장이 한창 커지고 있었다. 6~7개월 문전박대 끝에 BOE·CSOT·티안마·CC판다 등 4대 메이저 회사와 모두 납품 관계를 맺었다. 서 대표는 “신뢰가 쌓이면서 중국 업체들이 믿고 맡기는 관계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베셀은 지난해까지 꾸준한 외형 성장과 함께 순항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걱정이다. 서 대표는 “미·중 무역전쟁의 불똥이 튀고 있다”고 했다. 중국 정부와 금융권에서 기업에 자금을 풀지 않아 투자가 막히면서 협력사의 제품 납품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경량항공기 사업 도전

2013년 코넥스에 등록할 때 주변에서 축하의 말이 쏟아졌다. 2015년에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하지만 서 대표는 안주하지 않았다. 당시 비행기 관련 방산업체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유일했다. 비행기를 설계·제조하는 민간업체는 없었다. 마침 그해 말 국토교통부가 공고한 ‘경항공기 국책사업’ 개발업체로 선정됐다. 수입자동차와 비슷한 가격(2억원대)의 2인승 경량비행기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2014년 항공사업부 부설 연구소를 설립하고, 2016년 11월 경항공기 KLA 100을 출시했다. 2017년 초 충남 천안공장을 짓고 그해 7월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KLA 100에 대한 안전성 인증도 획득했다. 국토부와 협의해 내년 초 경기 화성시에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내년 가을께 양산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최근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의 ‘무인항공기 기반 해양안전 및 불법어업·수산생태계 관리 기술개발’ 사업의 총괄연구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프로젝트를 사업화하겠다는 것이 서 대표의 구상이다.

서 대표는 “노력과 모험이 없으면 기업은 성장하기 어렵다”며 “디스플레이 장비는 물론 경량항공기 무인항공기 등 작지만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분야를 파고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직원 행복이 회사 발전의 원동력”

이 회사 1층에 직원 전용 커피숍이 있다. 이곳에 캐리커처 2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지난해 회사에 기여한 주요 임직원의 얼굴이다. 인재를 아끼는 경영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정부는 근로자와 성과를 공유하는 기업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존경받는 기업인’을 선정해오고 있다. 서 대표는 2016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미래를 이끌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선정됐다. 서 대표는 경영실적에 따라 기본급의 50~250%를 매년 성과급으로 지급한다. 서 대표는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도 잘 운영된다”며 회사의 존재 이유가 직원과 함께 발전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서기만 대표 프로필

△1965년 서울 출생
△1993년 일본전자대 전자공학과 졸업
△1993~2004년 동서하이테크, 제우스 근무
△2004년 베셀 설립
△2013~2015년 제2대 코넥스협회 수석부회장
△2015년 12월 5000만달러 수출 달성
△2016년~ 제12대 경기벤처기업협회장 겸 전국벤처기업협회장
△2018년~ 수원시 세정협의회 위원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