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와 만난 '초간편 금융생활'…"장벽을 넘어 상상을 현실로"
물건을 잔뜩 집어 들고는 계산대에 섰는데 지갑이 없다.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두곤 땡볕 속을 걸어 집에 가 지갑을 챙긴 뒤 다시 마트로 가는 동안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불쾌지수는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메시지로 온 계좌번호를 복사해 모바일 뱅킹에 붙여넣으려는데, 숫자만 선택되지 않고 자꾸만 메시지 전문이 다 드래그된다. 손가락을 정교하게 움직여 마침내 숫자만 복사하는 데 성공했지만 접속 시간이 초과되는 바람에 모바일 뱅킹에서 로그아웃되고 만다. 영문과 숫자, 그리고 특수문자까지 포함해 10자 이상의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다시 입력해야 한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주인공 월터 미티는 일상을 벗어나는 어떤 모험도 해본 적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라이프(LIFE)’ 잡지사의 사진 인화 기사로 일하는 그는 표지 사진으로 쓸 필름이 분실되는 사고가 발생하자 필름을 찾으러 그린란드로 날아간다. 그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것뿐인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애 가장 특별하고 위험한 모험에 몸을 던지게 된 것이다. 월터가 출장 가방을 들고 달려가는 동안 영화는 회사 벽면에 전시된 라이프지 과년호들, 공항 전광판 문구와 활주로 표지 등을 통해 인상적인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한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방탄소년단(BTS)이 출연한 KB국민은행 간편생활금융 앱(응용프로그램) ‘Liiv’ 광고는 영화와 비슷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진다. “시간의 장벽을 넘고, 공간의 경계를 넘고, 뻔한 방식을 넘어 매일 함께 놀라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너와 나의 Liiv”라고 말이다. ‘Liiv’는 라이프(Life) 또는 리브(Live)의 변형어일 것이다. 양적 팽창과 속도 경쟁의 시대를 지나온 현대인들은 비로소 ‘삶의 질’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삶의 질 향상은 사실 거창하거나 대단한 데 있지 않다.

Liiv는 ‘지갑 없는 생활’을 표방하며 공인인증서라는 장벽, 대면 거래라는 경계, 지갑이라는 뻔한 방식, 모바일이라는 한계를 넘는 편리한 금융 서비스를 제시한다. 생활금융 이용만 편리해져도 보다 나은 삶이 가능하게 된다고 설득한다. 장벽을 넘고, 경계를 넘고, 뻔한 방식을 넘고, 한계를 넘는 것은 아주 작은 일상의 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이 광고가 왜 사랑받았는지에 대해 쓰는 일은 사실 간단하다.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한가? BTS인데, 그거면 다 된 거지. 그러나 그걸 에둘러 근사해 보이는 문장으로 써내는 게 평론가의 일이다. 이매진 드래곤스(Imagine Dragons)의 노래 ‘머신(Machine)’이 흐르는 가운데 영화 ‘인셉션’을 연상시키는 초현실적 장면들이 펼쳐진다. 시계가 제멋대로 돌고, 공간이 뒤집히고, 빌딩이 옆으로 눕는 세상을 BTS 멤버들이 자유롭게 활보한다. 모든 장면마다 화보처럼 근사하다.

내레이션과 함께 스마트폰 Liiv 앱 화면이 클로즈업되는데, 바코드에는 0111 0125 0520 0628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2018년 1월 11일은 BTS가 골든디스크 대상을 받은 날, 1월 25일은 서울가요대상을 수상한 날, 5월 20일은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2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한 날, 6월 28일은 미국 ‘TIME’지가 선정한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명의 인물’ 중 하나가 된 날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스마트폰에 Liiv 간편입출금 비밀번호 130613이 뜬다. 2013년 6월 13일은 BTS가 데뷔한 날이다. 영상미와 음악, 메시지도 훌륭하지만 이런 디테일함이 BTS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BTS의 팬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들은 모두 ‘아미(A.r.m.y·BTS 공식 팬클럽)’다.

금융생활의 보이지 않는 장벽과 경계로부터 해방되면 삶의 질도 향상된다. 이 메시지를 BTS가 전할 때, 멤버 중 한 명인 슈가(민윤기)가 “너도 넘어봐”라고 말할 때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BTS는 뻔한 방식을 넘어섬으로써 장벽을 넘고 경계를 넘고 놀라움의 한계를 매일 넘어서고 있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