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5천개 中企 밀집한
남동·반월·시화 산단 가보니
수도권에 있는 남동·반월·시화는 전국 최대 중소제조업 밀집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만 약 2만5000개의 중소업체 공장이 돌아간다. 이곳에 불황의 그림자가 덮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공장 매각·야근 중단·빈 트럭 행렬’ 등 3종 세트다.

최근 들어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밤낮없이 돌려야 할 공장은 멈춰선 곳이 많았고, 주차장엔 빈 트럭들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야근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경기 시화산업단지의 한 골목길에 공장 임대와 매각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경기침체 여파로 공장을 팔거나 세를 놓으려는 수도권 산업단지 내 중소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     /시화=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경기 시화산업단지의 한 골목길에 공장 임대와 매각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경기침체 여파로 공장을 팔거나 세를 놓으려는 수도권 산업단지 내 중소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 /시화=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곳곳에 ‘현 위치 공장 임대’ 현수막

경기 반월산업단지와 시화산업단지를 연결하는 중심도로인 별망로 이면도로에 접한 공장 곳곳엔 ‘현 위치 공장 임대(혹은 매각)’ 등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쉬쉬하면서 매물로 내놓는 것이 아니라 공장 건물에 매각 또는 임대 현수막을 거는 게 바뀐 풍경이다. 인근 중개업소 K사장은 “반월과 시화산업단지에서 나온 단독공장 매물만 100건이 넘고 지식산업센터 등에 입주해 있는 작은 공장 매물까지 합치면 수백 건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남동·반월·시화의 공장은 통칭 ‘백화점 물건’으로 불려왔다. 정가대로 팔 수 있다는 의미다. 서울의 영등포나 구로·금천, 경기 부천 등지의 작은 공장들이 가장 선호하는 1650~3300㎡ 규모의 공장을 사서 이전할 경우 1순위로 꼽던 곳이다. 교통이 편리하고 원·부자재 수급이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K사장은 “매각을 희망하는 기업인이 100명이면 매수희망 기업인은 20~30명에 불과할 정도”라고 최근의 분위기를 전했다.

빈 트럭도 늘고 있다. 외환위기 때만큼의 긴 행렬은 아니지만 시화산업단지 내 옥구천 주변이나 남동산업단지 이면도로엔 한창 바쁘게 일할 시간에도 빈 트럭들이 줄지어 정차돼 있다. 야근이 줄면서 단지 내 함바들도 저녁 시간이면 대부분 파리를 날릴 정도로 한산하다.
반월·시화 공장 매물만 100여건…"추석 이후 車부품사 줄도산 걱정"

해외 공장 이전에 경영환경 악화까지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은 한마디로 일감이 줄었기 때문이다. 한 도금업체 S사장은 “작년까지는 채산성을 따졌지만 지금은 그럴 처지가 아니다”며 “일감 확보가 가장 큰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도금단지에서 1년 새 폐업한 업체가 20%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는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대기업·중견기업 공장의 해외 이전,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에 따른 중국 경기 둔화 등을 꼽고 있다. 남동·반월·시화에는 자동차부품 전자부품 기계부품과 뿌리산업(도금 주물 열처리 등)을 영위하는 기업이 많다. 대부분이 대기업 및 중견기업의 협력사다. 자동차 전자 기계 등 주력 산업의 침체가 이들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및 환경규제 여파 등으로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일감이 크게 줄었다. 게다가 미·중 무역마찰로 중국 경기가 침체되면서 국내 기업의 대(對)중국 수출은 올 들어 7월 말까지 771억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7%나 줄었다. 이런 여파가 중소 협력업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화산단의 경우 업종별 가동률(지난 6월 기준)은 기계가 58.5%로 가장 낮았다. 그만큼 설비투자가 줄었다는 의미다. 섬유의복(61.3%), 비금속(65.1%) 등이 뒤를 이었다. 반월산단도 철강(57.7%), 기계(62.8%) 등 설비투자와 관련된 업종의 가동률이 60% 안팎에 머물렀다.

“기업활력 제고를 정책 최우선순위에 둬야”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를 타개하려면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경만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기업인들이 다시 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며 “기업을 힘들게 하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각종 환경규제, 가업승계를 어렵게 하는 세제 등 경제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순영 한성대 특임교수는 “주 52시간 근로제는 미래 먹거리 준비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기업인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정책”이라며 “일본의 수출 규제도 우려되는 상황인 만큼 중소·중견기업이 부품·소재 국산화와 미래 먹거리 개발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주 52시간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동·반월·시화=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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