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동조합 소속 차량들이 지난 21일 세종시 정부청사 및 아파트단지 인근 공사현장에서 차량 확성기를 이용해 민중가요를 틀고 있다. 경찰엔 소음 민원 신고가 잇따랐다. 사진=조재길 기자
한 노동조합 소속 차량들이 지난 21일 세종시 정부청사 및 아파트단지 인근 공사현장에서 차량 확성기를 이용해 민중가요를 틀고 있다. 경찰엔 소음 민원 신고가 잇따랐다. 사진=조재길 기자
지난 21일 이른 아침부터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인근에서 귀를 먹먹하게 하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한 산별노동조합에서 집회차량 두 대에 대형 확성기를 설치한 뒤 민중가요를 틀었던 겁니다. 하루종일 이어졌지요. 확성기는 공사현장을 겨냥했지만 주변 공무원과 아파트 주민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봤습니다. 이 소음은 수km 밖에까지 퍼졌습니다.

경찰도 여러 번 출동했다고 합니다. 현장을 찾은 경찰관은 “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112 전화가 많이 걸려와 출동했는데, 실측정 결과 기준치에 미치지 못했다”며 “순간적으로 기준치를 넘기도 했지만 금방 소리를 줄이면 처벌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현행 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업무시간대 소음 유발 허용치(주거지역 등 기준)는 65dB(데시벨)입니다. 10분 연속 이 기준을 넘을 때만 조치를 취할 수 있지요. 9분간 커다란 소음을 냈더라도 잠깐 낮추거나 끄면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소음이 법적 허용치를 초과했다 해도 바로 처벌할 수 없습니다. 경찰은 ‘기준 이하 소음유지 명령’만 내릴 수 있지요. 이 명령을 다시 어기면 확성기 사용 중지를 명령하고, 이를 반복해서 어길 때 비로소 사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이 경찰관은 “요즘 세종시에서 집회 소음 민원이 워낙 많이 발생하고 있어 국민권익위원회에 문의했지만 규제 허용치를 밑도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회신이 왔다”고 했습니다. 소음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으나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통과되지 않고 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커다란 소음을 유발하는 이익단체들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현장의 노조 관계자는 “원청인 건설업체가 갑질을 많이 해 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도 현장에서 실시간 소음을 측정하면서 음량을 조절하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우리 요구 사항이 해결될 때까지 확성기 집회를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지요.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인 세종시엔 정부 부처가 밀집해 있습니다. 이익단체·시민단체들의 항의 집회가 끊이지 않는 배경이지요. 고용노동부 앞에 설치된 ‘집회 천막’만 해도 2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주변엔 어린이집과 유치원도 몇 곳 위치해 있는데 말입니다. 공무원들은 우스갯소리로 “여기 아이들은 동요보다 민중가요를 먼저 배운다”고 했습니다.

소음만이 아닙니다. 불법 현수막(플래카드)도 문제입니다. 정부청사 펜스마다 더 이상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현수막이 촘촘히 붙어 있지요. 이중 삼중으로 붙이기도 합니다. 사유 재산이었다면 벌써 떼어냈을 겁니다.
 불법 현수막들이 세종시의 한 정부청사 펜스를 촘촘하게 둘러싸고 있다. 사진=조재길 기자
불법 현수막들이 세종시의 한 정부청사 펜스를 촘촘하게 둘러싸고 있다. 사진=조재길 기자
옥외광고물관리법에 따르면, 지정 게시대 이외의 모든 곳에 설치된 현수막은 불법입니다. 아주 일부의 예외만 있지요. 신고하지 않고 현수막을 설치하면 500만원 이하(1장당 25만원)의 과태료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현수막을 설치한 사람(설치를 요구한 사람 포함)에게 부과합니다. 단속 권한 및 의무가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각 이익단체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목적이나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을 뿐입니다.

도를 넘는 집회 소음과 불법 천막, 현수막 등은 선진국의 정부청사 주변에선 보기 힘든 광경들입니다. 중앙부처 공무원들도 공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음과 현수막 공해를 묵묵히 감내해야 하는 일반 시민들 심정은 어떨까요.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