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2세 경영인 3040 혁신 성공기
진주햄 박정진 사장·박경진 부사장

'품질 제일주의’ 지키고 젊은 감각 덧붙여

"2세에게 아버지의 회사는 '운명'…형제 힘 모아 '천하장사' 살렸죠"
“중견·중소기업인의 2세들에게 ‘아버지의 회사’는 ‘운명’과도 같습니다. 회사가 무난히 잘되고 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별문제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회사가 위기에 빠지면 달라집니다. 회사가 죽으면 나도 죽으니까. 도망칠 수 없을 만큼 아버지의 인생과 내 인생이 걸려 있으니까요.”(박정진 진주햄 사장)

기업이 위기였다. 각기 다른 길을 가던 형제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제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설상가상 든든한 지주 같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형제는 서로 ‘가장 믿을 만한 사업 파트너’가 됐다. 힘을 모으자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던 회사는 빠르게 턴어라운드하기 시작했다. ‘천하장사’ 소시지로 유명한 진주햄 이야기다.

조양상선그룹은 한진해운·현대상선과 함께 국내 해운업계의 ‘3대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하며 한때 재계 서열 30위권까지 올랐다. 국내 대표 해운사로 보험사와 진주햄 등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며 사세를 확장했던 조양상선그룹은 1998년 외환위기의 유탄을 맞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조양상선그룹의 정신은 진주햄을 통해 이어져 오고 있다. ‘분홍소시지’, ‘줄줄이비엔나’, ‘천하장사’로 잘 알려진 진주햄은 1963년 설립된 국내 최초 육가공 전문 업체다. 진주어묵 생산을 시작으로 당시에는 생소했던 축산물 가공품을 생산해 성장해 왔다. 조양상선그룹 창업자인 고(故) 박남규 회장의 셋째 아들인 고(故) 박재복 회장은 외환위기의 시련 속에서 회사를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박재복 회장은 1985년 조양상선이 진주햄을 인수한 직후 진주햄 대표로 취임해 25년간 회사를 이끌어 왔다. 계란물을 입혀 부쳐 먹던 분홍소시지, 도시락 단골 반찬이던 줄줄이비엔나 소시지, 스틱 모양 소시지 천하장사 등이 박재복 회장이 1980년대 직접 개발한 제품들이다.
"2세에게 아버지의 회사는 '운명'…형제 힘 모아 '천하장사' 살렸죠"
중국 수출로 새 활로 열어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회사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햄과 소시지 등 어육·연육 가공식품 시장에 CJ제일제당과 롯데푸드 등 대기업이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2006년 진주햄의 매출은 500억원대까지 내려앉았다. 회사의 자존심 같던 천하장사도 경쟁사에 밀려 주요 판매처인 편의점에서 수년째 ‘2등 제품’에 머무르게 됐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노틸러스효성과 컨설팅 회사 네모파트너즈 등에서 일했던 차남 박경진(39) 부사장이 먼저 경영에 참여했다. 당시 스물여섯 살이었다. 2010년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씨티그룹 상무였던 형 박정진(44) 사장이 합류했다. 공동대표를 맡은 둘은 힘을 합쳐 ‘진주햄 살리기’에 나섰다. 경영을 전공한 동생은 제품 생산과 유통 등 현장 실무를, 금융 전문가였던 형은 사업 확장과 수출 등의 밑그림을 그렸다.

박 사장은 “동생이 입사했을 때가 진짜 어려웠을 때이고 제가 왔을 때는 그래도 좀 나은 시절이었다”며 “회사를 영속적으로 이끌 방향을 동생과 함께 많이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서로 간에 가장 좋은 사업 파트너가 됐다”고 말했다.

형제의 팀워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기업 이미지(CI)를 바꾸고 프리미엄 소시지 브랜드 ‘육공방’을 출시했다. 매년 신제품 70~80개를 새로 냈다. 참치·만두·육포 등 300여 개 제품을 생산하는 종합 식품회사로 탈바꿈했다. 손을 맞잡은 지 4년 만인 2014년 다시 매출 1000억원대를 회복했다. 2017년 매출은 1186억원. 2018년 매출은 1206억원을 기록했다.

2017년은 진주햄에 남다른 해였다. 박 사장과 박 부사장은 장수 브랜드의 전통을 되살리기로 했다. 천하장사는 2017년 8월 출시 33년 만에 새 옷을 갈아입었다. 패키지를 다 바꿨다. 프리미엄급인 ‘천하장사 더블링’ 제품도 내놓았다. 어육 스틱 소시지 제품은 보통 소시지 안에 치즈 등 토핑이 군데군데 박혀 있는데 더블링 제품은 중앙에 빨대를 꽂은 것처럼 토핑을 가운데 심어 놓았다. 일본의 기술을 들여와 2년간 연구한 결과물이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에서 입소문을 타며 천하장사 매출은 2016년 450억원에서 작년 530억원으로 17.6% 증가했다. 그 결과 천하장사는 주요 판매처인 편의점에서도 40%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며 경쟁 제품을 꺾고 1위로 올라섰다. 천하장사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진주햄은 2018년 2월 줄줄이비엔나의 프리미엄 제품인 ‘줄줄이비엔나 오리지널’을 새로 내놓았다.

박 사장은 진주햄 성장의 핵심 키워드로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신규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해외 진출이다.

2008년부터 천하장사는 해외시장을 두드렸다. 현재 중국·캐나다·베트남·미국·대만·홍콩 등에 진출해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대박’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천하장사는 ‘대력천장(大力天將)’이란 이름으로 중국에도 수출되고 있다. 2009년 중국 진출 첫해 매출은 3000만원이었지만 2014년 70억원을 넘어선 뒤 꾸준한 성장을 이어 가며 지난해 130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까지 중국 내 누적 매출은 520억원이다. 박 사장은 “중국 유아 소시지 시장에서 영양 간식으로 인기”라며 “첫 수출 때 천하장사를 먹던 어린이들이 20대에 접어들면서 매출이 더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마산그룹과의 조인트벤처도 진주햄에 또 다른 기회다. 진주햄은 마산그룹 계열사 사이공 뉴트리푸드의 신주 25%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조인트벤처(JV) ‘마산 진주 JSC’를 설립할 계획이다.

마산그룹은 베트남 최대 식품 기업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베트남 가정의 98%가 적어도 마산그룹이 생산한 제품 하나는 쓰고 있다. 피시소스·칠리소스·소시지 등 자회사 56곳을 통해 베트남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꼭 필요한 제품을 생산한다.

현지 기업 합작해 베트남 시장 공략 개시

창립 22년을 맞는 마산그룹은 베트남 증시에서 시가총액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이 됐다. 시가총액은 약 4조5000억원이다. 마산그룹은 지난해 매출 37조6210억 동(약 1조7870억원), 영업이익 4조4290억 동(약 2104억원)이다.

박 사장은 “마산그룹과의 합작사 설립을 통해 베트남 육가공 시장을 본격 공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마산그룹이 미국이나 일본의 다른 식품 대기업이 아닌 진주햄을 선택한 것은 우리의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라고 본다”고 말했다.

베트남의 돼지고기 1인당 소비량은 28.8kg으로 중국과 유럽연합(EU)에 이어 세계 3위다. 비즈니스모니터인터내셔널(BMI)은 베트남을 2020년까지 육류 소비가 가장 비약적으로 증가할 6개국 중 하나로 꼽았다.

베트남 육가공 시장 1위는 ‘비산(Vissan)’이다. 마산그룹은 2016년 비산 지분 24.9%를 1600억원에 인수했다. 2015년에는 육가공 기업 사이공 뉴트리푸드를 인수했다. 베트남 육가공 시장은 아직 규모가 크지 않지만 매년 두 자릿수로 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산그룹은 사이공 뉴트리푸드를 선도적인 육가공 업체로 키우는 데 실패했다. 생산 관리능력과 시장 선도형 혁신 상품 개발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번 합작사 설립을 통해 진주햄의 기술력과 마산그룹의 유통망(영업 사원 2000명, 거래처 18만 개)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진주햄은 약 100억원 정도 설비투자를 진행해 베트남 신공장 건설을 마무리했다. 진주햄 관계자는 “베트남 육가공 시장의 비율은 현재 전체 육류 시장의 1% 정도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점차 커질 것”이라며 “이번에 마산그룹과의 합작사 출범을 통해 2022년 매출 2000억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이 꼽는 또 다른 성장 전략은 인수·합병(M&A)과 투자다. 진주햄은 2015년 수제 맥주 기업 ‘카브루(KABREW)’를 인수했다. 카브루는 2000년 설립된 1세대 수제 맥주 업체다. 박 사장과 박 부사장 형제가 주도한 첫 신사업이다.

진주햄에 편입된 이후 카브루는 견고한 외형 성장세를 이어 왔다. 첫 감사 보고서가 올라온 2015년 39억원이었던 매출액은 지난해 56억원으로 불어났다. 매년 꾸준히 20%대 성장을 이어 온 셈이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영업이익률 20% 수준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기존 B2B에서 B2C까지 유통망을 확대할 계획이다. 가파른 성장이 예고된 수제 맥주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려면 B2C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이다.

마케팅을 위한 재원도 확보했다. 최근 벤처캐피털인 코오롱인베스트먼트에서 30억원을 투자받았다. 회사 설립 이후 첫 재무적 투자자(FI) 유치다. 홍대·강남 팝업스토어, 카브루 페스티벌 등 기존 진행하던 마케팅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생산능력 확보는 이미 끝났다. 지난해 카브루는 가평에 3브루어리를 준공했다. 펍에 공급되는 케그(keg : 나무통에 든 생맥주)만 생산하는 2브루어리와 달리 3브루어리는 병·캔을 병행 생산할 수 있게 설계됐다. 지난해 자체적으로 3종의 캔맥주를 출시했고 올해는 GS편의점과 손잡고 ‘경복궁에일’을 내놓았다. 올해 B2C 사업 본격화로 카브루가 예상하는 연간 매출 규모는 100억원이다. 내년에는 시리즈B 투자 유치와 함께 4브루어리 건설에도 착수할 계획이다.

수제맥주·샐러드 등으로 포트폴리오 다각화

샐러드 판매 회사인 샐러디는 두 형제가 멘토 역할을 하다 투자까지 이어진 기업이다. 현재 진주햄은 2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소개로 만난 샐러디 경영진에게 식품 기업에서 경험한 노하우들을 공유해 주면서 멘토 역할을 자처했다. 당시 매장이 3개에 불과했던 스타트업 샐러디는 현재 56개로 늘어나며 사업 확장에 날개를 달았다. 두 형제는 멘토링과 함께 진주햄을 통해 전략적 투자자로도 참여하고 있다. 샐러디는 최근 무인 매장과 수요 예측 알고리즘 개발 등에 나서며 푸드 테크 기업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컨비니언스는 직접 창업 전선에 뛰어든 회사다. 컨비니언스는 2014년 박 부사장이 젊은 창업가들과 한데 뭉쳐 설립한 버티컬 커머스(vertical commerce) 기업이다. 박 부사장은 직접 대표로 재직하며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자체 브랜드인 ‘바른생각’을 앞세운 콘돔 등 섹슈얼 제품 판매 전략은 성공적이다. 지난해 컨비니언스는 매출액 56억원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카브루뿐만 아니라 컨비니언스와 샐러디도 외부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컨비니언스는 벤처캐피털에서 15억원을 조달했다. 샐러디는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자금을 투자받았다.

박 사장은 ‘의외로’ 최근 2년이 경영에 참여한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원가가 올라가면서 제조업 전반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박 사장은 올해 특히 ‘내실 다지기’에 주력할 방침이다. 그는 “결국 식품 회사에 가장 중요한 것은 품질”이라며 “과거도 현재도 진주햄의 품질이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선대 박재복 회장은 “먹는 것으로 장난치느니 차라리 회사가 손해 나서 망하는 길을 택하겠다”고 말할 만큼 품질관리와 위생 관리를 기업 운영의 첫째 기준으로 삼았다. 박 사장은 “올해는 과도한 성장보다 보다 차분하게 품질관리에 주력하며 성장을 이어 가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또 사업 간 시너지를 키우면서도 젊은 감각을 반영하고 대중과 소통을 이어 갈 계획이다. 박 사장은 “큰 트렌드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산업을 눈여겨보며 꾸준히 투자할 계획”이라며 “여러 방면으로 사업 다각화를 해나가며 규모의 경제를 키우는 것이 진주햄이 살길”이라고 말했다.

박정진 사장 약력 : 1975년생. 1998년 서울대 공대 졸업. 2003년 로체스터대 MBA. 2003년 삼성증권 M&A팀. 2006년 씨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 기업투자부문 이사. 2013년 진주햄 대표이사 사장(현). 2015년 카브루 대표(현).

박경진 부사장 약력 : 1980년생. 2002년 한국외국어대 경영학과 졸업. 2002년 효성데이타시스템 신사업 기획팀. 2005년 네모파트너즈 컨설턴트. 2006년 진주햄 전략기획실 이사. 2008년 진주햄 운영총괄 상무. 2010년 진주햄 부사장(현). 2013년 컨비니언스 대표(현).

한경비즈니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8호(2019.08.19 ~ 2019.08.2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