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이석남 회장)이 1985년 창업해 직원이 6명인 인쇄소에 아들(이경수 대표)이 입사했다. 당시 ‘인쇄업이야말로 사양 산업’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아들은 새로운 업종으로 변신을 꾀하는 대신 아버지를 도와 ‘기술투자’와 ‘전문화’에 몰두했다. 인쇄를 더 잘하는 것, 인쇄를 넘어서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의약품 포장재 전문 인쇄업체 삼화당피앤티 얘기다. 이 회사는 100억원을 투자해 최근 경기 남양주시 진관일반산업단지에 연면적 3608㎡ 규모의 새 공장을 준공했다.
인쇄소서 인쇄 기술 장비 회사로 변신…"성장·수익성 모두 잡았죠"
연구개발로 업그레이드

의약품 포장재를 인쇄·제작하는 삼화당피앤티는 한미약품, JW중외제약, 한국얀센 등 국내외 30여 개 제약사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일반의약품 중 타이레놀이나 케토톱 포장재가 대표적인 생산품이다. 1990년대 말 거래하던 화장품 업체들이 도산하자 의약품 포장재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문제는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의 의약품은 포장재 인쇄(색상)가 어렵고 힘들다는 것. 삼화당피앤티가 5년여를 투자해 2013년 자동조색장비 ‘믹스코(Mixco)’를 직접 개발한 이유다. 2008년 사내 기술연구소도 설립했다.

이 대표는 “사람(조색사)이 직접 잉크를 배합해 색깔을 만들어 낼 경우 잉크 낭비도 많지만 색상 오차 값이 커 인쇄 품질이 들쑥날쑥했다”며 “유럽과 일본 조색 시스템을 뜯어보며 국내 실정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믹스코는 작업자가 원하는 색을 터치스크린에 입력만 하면 자동으로 정량 잉크를 토출해 정확하고 균일한 색을 재현하는 장비다. 정밀한 전자저울이 점 하나에 해당하는 0.2g까지 측정한다. 외국 경쟁 제품과 달리 다품종 소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잉크별 공급량을 줄였고 가정용 냉장고 크기로 소형화했다. 이후 생산현장에서 끊임없이 성능을 개선했다. 인쇄 불량률이 급격히 줄면서 고객사의 품질 만족도가 높아졌다.

회사 측은 작년부터 믹스코를 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인쇄업계 지인들 요청이 잇따라서다. 이 대표는 “적극적인 연구개발(R&D)에 힘입어 비슷한 일본 제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대당 5000만원에 내놓고 있다”며 “지난해 총 13대를 판매했다”고 말했다.

“미래 읽지 않으면 도태”

이 회사의 또 다른 경쟁력은 무선주파수인식(RFID)이다. 제품 고유 식별번호 등이 담긴 칩을 내장한 전자태그를 약품 포장재에 부착한다. 국내 상위 제약사들은 의약품 물류 처리 및 재고 관리에 RFID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RFID 정보를 절대 놓치지 않도록 정확하고 빠르게 전자태그를 부착하는 게 핵심 기술이다.

삼화당피앤티는 360도 회전하며 원하는 포장재 위치 어디에나 태그를 부착하는 자동화 기계를 자체 개발했다. 현재는 근접무선통신(NFC) 및 인코딩 관련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인쇄업 수요는 일정한데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업종 평균 마진은 계속 줄고 있다”며 “살아남기 위해선 차별화된 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으로 계속 기술개발에 투자했다”고 강조했다.

삼화당피앤티는 지난해 매출 106억원을 기록했다. 15년 이상 근무한 팀장들을 포함해 장기 근속자가 많은 게 특징이다. 지난해 9월 남양주 진건일반산업단지에 자체 클린룸을 갖춘 공장을 신축해 최근 준공했다. 내부 벽면에 화가의 작품을 그려 넣어 공장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2004년 세운 서울 성수동 사옥은 전면 리모델링을 거쳐 연예 매니지먼트사에 임대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인쇄업체가 왜 그런 걸 해’ ‘R&D 투자라니 미쳤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그는 “단순 ‘제품’이 아니라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장인정신이야말로 중소기업의 힘”이라며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장인정신을 가진 독보적인 회사로 성장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남양주=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