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준 국세청장이 지난 12일 세종시 본청에서 열린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국세청 제공

김현준 국세청장이 지난 12일 세종시 본청에서 열린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국세청 제공

돈 쓸 곳은 많습니다. 돈 나올 곳은 적습니다. 우리나라 세금 이야기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내년 예산을 크게 증액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요구하는 내년 예산은 530조원 규모입니다. 올해보다 무려 13% 가까이 늘어난 수준이죠. 경기 하강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게 이유입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돈을 풀어야 한다’는 인식도 작용했다는 분석입니다.

결과적으로 내년 예산은 500조원을 훌쩍 상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올해 본예산은 469조6000억원이었죠.

정부 예산은 2017년 400조원을 처음 돌파했는데, 불과 3년 만에 예산이 100조원 넘게 증액되는 겁니다. 속도가 전례없이 빠릅니다.

문제는 세수입니다. 내년에만 약 50조원의 예산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세금은 오히려 덜 걷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올해 국세 수입은 약 300조원으로 예상됩니다. 예산에서 국세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65%를 넘지요. 정부는 내년에도 국세 수입 규모가 비슷할 것으로 추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해 예산안을 짜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국세 수입이 그만큼 들어올까요. 무엇보다 전체 세수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법인세가 올해보다 덜 걷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간신히 버텨온 기업 실적이 올들어 급격히 악화하고 있어서죠. 기업 전체 수출은 작년 12월(-1.7%) 감소세로 돌아선 뒤 이달까지 9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한·일 경제전쟁 등 대외 악재까지 터졌습니다. 올해 장사가 잘 안되면 내년 납부할 세금이 적을 수밖에 없지요.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만 해도 그렇습니다. 매 분기 15조원 정도의 영업이익을 기대했지만 올 2분기엔 6조6000억원에 그쳤습니다. 이익 규모가 기대치의 3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진 겁니다. 삼성전자는 작년 한해동안 약 12조원의 법인세를 낸 회사이죠. 정부가 작년부터 법인세 최고세율을 높였지만, 실적악화 등의 이유로 법인세수는 오히려 감소할 공산이 큽니다.

부동산 시장까지 불황을 맞으면서 양도소득세가 급감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양도세를 포함한 소득세는 법인세보다 국세 비중이 큰 항목입니다.

국세청이 집계하는 세수 진도율은 올들어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습니다. 세수 진도율은 정부 목표액 중 실제로 걷은 세금의 비율입니다. 지난 수 년간 이어져온 ‘세수 호황’이 막을 내렸다는 방증이기도 하지요.

당정이 500조원 넘는 ‘슈퍼 예산’을 편성한 뒤 세금이 잘 걷히지 않으면,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습니다. 국채를 더 발행하거나 세원(稅源) 을 더 발굴할 수밖에요. 전자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부담(빚)을 전가하는 것이고, 후자는 납세자 이탈을 불러오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공짜 점심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정부는 2020년도 예산안을 이달 말 확정하고 다음달 초 국회에 제출할 계획입니다. 경기 침체로 확장적 재정운용 기조가 불가피하다면서, 내년 국세 수입을 ‘정상 경기 상황’에 맞춰 편성하는 게 맞는 지 의문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