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특화 캠퍼스는 특별한 선구안에서 출발한 게 아닙니다. 기능 1세대의 자존심이자 사명감입니다."

이석행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은 12일 <한경닷컴>과 만난 자리에서 "반도체 특화 캠퍼스에서 인력을 키우는 건 우리 대학의 사명감이자 한평생 기술인으로 살아온 나의 자존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폴리텍대는 오는 10월 안성캠퍼스를 반도체 특화 캠퍼스로 전환한다. 반도체 회로를 설계하고, 반도체 시스템을 유지·보수할 수 있는 인력을 전문적으로 양성할 방침이다. 반도체 관련 학과를 운영 중인 성남(신소재응용과)·아산(반도체디스플레이과)·청주(반도체시스템과) 캠퍼스는 각각 소재, 후공정, 장비 유지보수 분야로 특화할 계획이다.

4개 학과 180명 정원의 2년제 학위과정은 9개 학과 350명으로 확대하고, 65명 정원인 단기과정은 기업 수요에 따라 늘리기로 했다.

일본이 지난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장비 국산화가 요원한 상황. 폴리텍대의 반도체 기술인력 양성 계획이 남다른 묘수이자 선구안으로 읽히는 이유다.

"일본의 경제 제재 이전에 일찍이 반도체 기술인력 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해왔다"고 생각을 밝힌 이석행 이사장은 "반도체 특화 캠퍼스 구축을 위해 한국반도체산업협회와 오래 논의를 해왔다. 반도체산업협회와 커리큘럼을 공유하고, 반도체 기업에서 장비도 기증받았다"며 "뿌리기술 분야의 인력 육성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장 기술력을 갖춘 반도체 기술 인재를 양성해 나갈 것이다. 소재·장비 국산화를 앞당기는 데 폴리텍대가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학교의 체질 개선에도 힘썼다. 4차산업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 과제를 수동적으로 수행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보다 적극적·능동적으로 학교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폴리텍대는 전문 기술인을 양성하는 고용노동부 산하 교육기관이다. 1968년 6월 인천에 설립된 기술인 양성기관 국립중앙직업훈련원으로 출발해 전국 36개 캠퍼스를 두고 있다.
이석행 폴리텍대학 이사장 "반도체 특화캠퍼스로 日 조치 맞선다"
이석행 이사장은 "변화하는 산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교를 잘 알아야 했다. 전국 36개 캠퍼스를 3~4번 돌았다. 나 만큼 폴리텍대 구석구석을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그는 "교수 300명과 신기술교육원에 모여 밤샘토론을 한 적도 부지기수다. 학교를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지를 함께 끊임없이 고민했다"며 "결국 칸막이를 없애는 융합교육이 4차산업을 이끌어나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에 생각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에 학과를 개편·신설해 신산업·신기술 분야의 학과 비중을 늘렸다. 작년에는 스마트금융(핀테크), 스마트자동화(스마트팩토리), 스마트전기에너지(ESS·EMS) 학과를 새로 만들었고, 올해는 스마트자동차, 가상현실(VR)미디어콘텐츠, 사물인터넷(IoT)정보보안 학과를 신설했다. 신산업·신기술 학과 비중은 2018년 7%에서 2022년에는 20%로 늘리고, 대졸자 대상 신산업·신기술 교육과정도 올해 775명 2022년 1500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러닝팩토리·스마트팩토리도 이 이사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이다.

러닝팩토리는 칸막이식 학과 운영을 탈피해 공정 전(全)단계 학습이 가능하도록 만든 융합실습지원센터다. 지난해 시범 개소한 인천캠퍼스에는 소상공인 재직자 교육, 창업 진로체험 등을 통해 6개월간 4780명이 러닝팩토리를 활용했다. 올해는 자동화, 반도체, 바이오 등을 포함한 러닝팩토리 16개를 신설할 계획이다.

2022년까지 스마트팩토리 특화 캠퍼스도 10곳으로 늘리기로 했다. 스마트팩토리란 설계·개발, 제조, 유통·물류 등 생산 과정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해 생산성, 품질, 고객만족도를 향상시킨 지능형 생산공장이다.

이석행 이사장은 "정부의 스마트공장 선도 산단 선정과 연계해 스마트팩토리 특화 캠퍼스를 10곳으로 늘리고, 2022년에는 기초·중간단계 수준의 전문 인력 4400명을 양성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폴리텍대학 인천캠퍼스의 러닝팩토리(사진=한국폴리텍대학)
한국폴리텍대학 인천캠퍼스의 러닝팩토리(사진=한국폴리텍대학)
작년 12월 인천공항공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추진 중인 항공정비(MRO) 전문인력 양성 사업에도 기대가 실린다. 국제인증 자격 프로그램(EASA, PART-147) 기준에 따른 시설·장비, 교과, 교관 운영 마련에 관해 STA(항공MRO산업 선도기업) 항공우주기술교육센터와 싱가포르폴리텍의 지원을 협의 중이다. 싱가포르폴리텍과는 연내 업무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석행 이사장은 "대학과 기업의 연관성 더 커져야 한다. 기업 연구소와 폴리텍 연구소를 지속적으로 매칭할 것"이라며 "폴리텍대학은 뿌리산업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기계를 제조하고 만드는 인력은 폴리텍대만한 곳이 없다. 뿌리산업을 바탕으로 신산업·신기술 분야를 키워 4차산업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폴리텍대는 오는 14일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위치한 폴리텍 서울정수캠퍼스에서 '제3회 벤처 창업 아이템 경진대회'를 개최한다. 이번 경진대회는 우수한 창업 아이템과 유망 아이디어를 보유한 예비 창업자를 발굴하고 창업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경진대회에는 총 70개 팀이 참가, 지난달 열린 1박2일간의 창업캠프와 전국 예선을 거쳐 23개 팀이 본선에 올랐다. 이 중 총 11개 팀(장관상2, 금상 1, 은상 3, 동상 5)을 수상자로 선정한다.

이석행 이사장은 "2017년 8월 첫 벤처창업아이템 경진대회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창업 동아리 65개가 만들어졌고, 많은 특허와 창업 성과를 거뒀다"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청춘기술 인재들의 아름다운 도전 무대라 생각한다"고 격려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