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 다른 업종에 비해 ‘관치(官治)’의 입김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영역이다. 최고경영자(CEO) 교체는 물론이고 예금상품을 하나 출시할 때조차 당국의 뜻을 살펴야 한다. 공무원이 무언가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겠다”고만 말해도 업체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 ‘금융권 일자리 창출효과 측정 계획’을 발표했다. 금융회사가 직·간접 고용한 일자리를 뜻하는 ‘자체 일자리 기여도’와 은행이 각 산업에 지원한 자금 규모 등을 포함한 ‘간접적 일자리 창출 기여도’를 평가해 공표하겠다는 것이다. 신한, 국민, 우리, KEB하나 등 8개 시중은행과 부산, 광주 등 6개 지방은행을 조사 대상으로 정했다. 결과는 다음달께 나온다.

정부는 은행 순위를 매겨 ‘망신주기’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다. 은행권 전체의 고용창출 기여도와 부문별 우수 사례를 공개할 뿐이라는 설명이다. 금융위는 “금융회사는 근로 여건이 좋고 임금 수준이 높아 청년들이 선호하는 직장”이라며 “업권의 전반적인 일자리 창출 현황과 변화 추이 등을 파악해 정책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금융권 안팎에선 “정부가 ‘채용을 늘리라’는 무언의 압박을 보내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무성하다. 금융 업무가 갈수록 자동화하면서 민간 은행들은 직원 수 늘리기가 부담스럽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시중·지방은행 임직원 수는 2014년 말 8만6881명에서 2017년 말 7만7756명으로 줄었다. 2018년 말에는 8만1788명으로 반짝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금융당국이 업계에 신규 채용을 독려한 데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비대면 거래가 급증하는 흐름에 대응해 점포 수를 줄이려는 은행들의 시도에도 제동이 걸렸다. 금감원은 지난해부터 무분별한 점포 폐쇄를 제한하는 ‘모범규준’ 도입을 추진했다. 노인 등 금융취약계층의 피해를 막는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은행들이 난색을 보이자 강제성이 다소 낮은 ‘공동협약’ 형태로 대체했다. 점포를 줄이지 않는 은행에 경영실태평가 가산점을 주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인위적으로 직원을 늘리고 점포 수를 유지한다면 고용창출 지표에는 잠시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금융회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