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밖 금리 하락에 원금 손실 '눈덩이'
1兆 판매한 시중은행·증권사 '전전긍긍'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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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은행과 거래하는 B씨는 8일 투자상품 수익률 소식을 듣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은퇴 자금의 절반인 1억원을 투자했는데 원금 대부분을 잃고 1000만원만 남았기 때문이다. B씨는 “9월이면 만기가 돌아오는데 그때는 1000만원도 못 건질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며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작다는 얘기만 듣고 투자했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을 통해 판매된 금리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이 줄줄이 대규모 손실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원금을 거의 다 까먹은 상품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사모 형태로 발행한 유가증권이어서 1인당 투자금액도 최소 1억원 이상이다. 금융업계에서는 이들 은행이 판매한 금리연계형 DLS 규모가 대략 1조원 수준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은 최근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지만 마땅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금액과 손실 규모가 커지면서 금융감독원도 실태 파악에 나섰다.

투자자 ‘멘붕’

DLS는 금리, 환율, 국제 유가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금융상품이다. 기초자산의 가격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상품은 금리연계형 DLS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은 지난해 말부터 금리에 연동된 DLS를 집중적으로 팔았다. 우리은행은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와 영국 CMS(파운드화 이자율 스와프) 금리 연동 상품을 주로 판매했다. 영국 CMS 금리는 영국 국채 금리와 거의 비슷하게 움직인다. KEB하나은행의 DLS 상품은 대부분 미국·영국 CMS 금리와 연동돼 있다. 판매액은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이 각각 40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전해졌다. 두 은행 외에 증권사 등이 독일·영국 국채 금리에 연동된 DLS를 2000억원어치가량 판매해 총 1조원 규모의 금리연계형 DLS가 팔렸다.

두 은행 모두 해당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지만 않으면 연 환산 4~5% 수익률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금리가 구간 밖으로 벗어나면 투자 원금 전부를 잃을 가능성이 있도록 설계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올 들어 독일 국채 금리와 영국 CMS 금리는 급락했다.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는 올초 연 0.168%에서 지난 7일 기준 -0.582%까지 하락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대형 악재가 불거지면서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쏠려 채권 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이에 따라 해당 상품에 가입한 소비자는 투자 시점별로 최대 90% 이상 원금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국채 금리에 연계된 DLS의 손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컸다. 영국 CMS 금리에 연계된 DLS는 대략 원금의 절반가량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리 변동 구간을 정해놓은 뒤 수익률엔 상한선을 두고, 손실률은 원금 100%까지 열어놨다는 점에서 논란을 빚었던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와 구조가 비슷하다”고 말했다.
금리연계형 DLS 폭탄?

금감원, 실태 파악 나서

금융감독원도 실태 점검에 들어갔다. 두 은행뿐 아니라 금융권 전체를 통틀어 금리연계형 DLS 판매 규모와 손실률 등을 파악하고 있다. 감독당국은 불완전판매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불완전판매 여부를 정확하게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도의적인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문제가 된 금리연계형 DLS는 원금 손실 리스크가 커서 다른 은행이나 증권사들은 판매하길 꺼린 상품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리스크 관리를 가장 철저히 해야 할 은행들이 증권사들도 꺼리는 고위험 상품을 판매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감독당국은 이들 은행이 판매한 DLS 상품의 만기가 다른 상품에 비해 짧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상품 만기가 짧으면 1년 동안 은행들이 받을 수 있는 수수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영업 실적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 좋은 전략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4개월 만기 상품은 은행이 1년 동안 같은 상품을 세 번 판매하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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