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부터 상장사를 중심으로 민간 기업에 시행하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공공기관에도 도입하기로 했다. 에너지와 금융 공기업 등 330여 곳이 이르면 내년부터 정부로부터 외부감사인을 강제로 지정받게 될 전망이다.
공기업도 내년부터 '감사인 강제 지정'
“공기업 회계투명성 더 높여야”

29일 여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상 공공기관에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한 회계전문학회에 관련 연구용역을 맡겼다. 기재부 관계자는 “연구용역 결과를 받아 공운법을 개정해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라며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또 “법 개정이 안 되더라도 일단 주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내년부터 시범 시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6년간 자율적으로 선임하면 그다음 3년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감사인을 지정받는 제도다. 국회가 대우조선해양 분식 사건을 계기로 회계투명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2017년 외감법 개정을 통해 도입했다. 개정법은 상장사와 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 비상장사 중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회사를 대상으로 삼았을 뿐 비상장 공공기관은 제외했다. 공공기관은 공운법에 따라 일반 민간기업보다 엄격한 회계기준을 적용받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부는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하는 공공기관은 회계투명성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는 학계와 회계업계 지적에 따라 공공기관에도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민간 부문은 감사인 지정제가 도입돼 회계 개혁의 완성 단계에 도달했으나 공공, 비영리 부문은 미흡하다”며 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제도가 도입되면 한국마사회 등 29개 공기업, 국민연금공단 등 93개 준정부기관을 비롯해 최대 332개가 해당될 예정이다.

“분식회계 유인 적은데…” 실효성 지적도

공공기관은 민간기업에 비해 분식회계의 유인이 낮기 때문에 감사인 지정제를 도입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감사인을 지정하면 감사보수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굳이 민간 기업과 같은 제도를 도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한 회계학 교수는 “공공기관장은 민간기업 최고경영자와 달리 회계적 수치를 좋게 포장하는 것이 평가 우선순위에 있지 않다”며 “회계를 조작할 이유가 없는데 굳이 지정제를 통해 감사보수를 높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공공기관에 대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도입이 분식회계 적발보다는 자금을 규정에 따라 정당하게 집행하고 운용했는지를 살펴보는 ‘합규성 감사’에 효과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른 국가에는 공공기관이 설립 취지에 맞게 공익을 위한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를 감사원이 아니라 제3자가 감독하는 합규성 감사 제도가 발달돼 있다는 설명이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기업의 재무구조 악화가 정당한 투자에 따른 결과인지, 정권이 바뀐 이후 대규모 적자가 난 공기업이 있다면 그 원인이 급격한 정책 변경에 따른 것은 아닌지를 따져보는 쪽으로 감사를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6년간 자율적으로 선임하면 다음 3년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감사인을 지정받는 제도. 기업이 회계법인을 선임하면 ‘갑을관계’가 형성돼 부실감사로 이어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임도원/하수정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