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 규제 등으로 반도체 소재·재료 국산화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강화된 환경 규제가 기업의 연구개발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한 반도체 공장 클린룸에서 직원이 반도체 노광공정의 핵심 재료인 포토마스크를 점검하고 있다.  /한경DB
일본의 수출 규제 등으로 반도체 소재·재료 국산화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강화된 환경 규제가 기업의 연구개발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한 반도체 공장 클린룸에서 직원이 반도체 노광공정의 핵심 재료인 포토마스크를 점검하고 있다. /한경DB
국내 반도체 소재업체 솔브레인은 올해 초 환경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벌였다.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에 따라 환경부가 영업비밀을 모두 공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솔브레인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적층형 낸드플래시 반도체 식각액 제조에 쓰이는 화학물질명 등을 환경부가 공개토록 하자 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낼 수밖에 없었다. 솔브레인 측은 ‘영업비밀에 해당되는 조사 결과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화관법 제52조에 따라 환경부에 관련 정보를 비공개하도록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솔브레인이 개발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국가핵심기술로 인정받은 물질의 매출은 지난해 회사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했다. 1년간의 다툼 끝에 솔브레인은 지난 4월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 그렇게 영업비밀 공개를 막았다. 솔브레인 관계자는 “해당 기술은 5년 이상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것”이라며 “화관법은 모든 정보의 공개를 전제로 하고 기업이 개별 사안마다 예외를 인정받아야 하는 방식이라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를 계기로 과도한 환경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품·소재 국산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를 위해선 환경 규제 완화가 선결돼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대표적 규제 부처인 환경부 정원은 2016년 1889명에서 2019년 2362명으로 3년 새 25% 증가했다. 조직과 인원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역할이 커졌고 이런저런 규제도 증가했다는 의미다. 환경부 관계자는 “증원 인력 대부분이 현장 단속인력”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소재 국산화 발목잡은 환경부…3년 새 25% 증원
화평법·화관법 한 달 만에 국회 통과

박천규 환경부 차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수출 규제의 대응책으로 화학물질 규제 완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연구개발(R&D)용 신규 화학물질 인허가 기간 등을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업계는 이 같은 방침을 환영하면서도 “기업들과의 충분한 소통 없이 여론에 따라 환경 규제가 뚝딱 만들어지는 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화학업체 관계자는 “환경 관련 규제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는 업계도 공감하지만 규제 형식과 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져 당장 고쳐야 할 것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이 화관법이다. 화관법은 2012년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를 계기로 2013년 개정됐다.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의 배치 및 설치와 관련한 관리기준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작년 말 개정된 화관법은 내년부터는 법 시행 이전에 지어진 공장도 추가로 ‘저압가스 배관검사’를 받도록 하는 등 강화된 기준을 충족하도록 하고 있다. 소급 규정으로 인해 상당수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장이 검사를 위해 라인을 세워야 할 가능성도 있다.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역시 마찬가지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제정됐다. 지난해 3월 개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올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국내 사업장에서 연간 1t 이상 제조하거나 수입하는 화학 물질은 정부에 등록해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중소·영세기업들은 “화학물질 등록에 필요한 전담 인력과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R&D용 물질은 특례를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리한 조업정지 명령

산업계 현실에 대한 고려보다 행정 편의를 위한 규제가 앞서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예로 환경부가 현실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내놓은 유권해석이 큰 파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환경부는 ‘제철소 고로(용광로) 안전밸브(브리더) 개방은 불법(대기환경보전법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놔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철소들에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내리는 근거로 이용됐다.

그러자 한국철강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고로를 정비할 때 일시적으로 브리더를 개방하는 것은 근로자 안전 확보를 위한 필수 절차”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대체 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조업정지 처분은 사실상 운영 중단을 의미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업계에 따르면 1개 고로가 10일간 가동을 멈추면 복구에만 3개월이 걸린다. 손실액은 8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논란이 커지자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제철소들의 행정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고 조업정지는 이뤄지지 않았다. 환경부는 지난달 민관협의체를 발족하고 다음달까지 관련 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타다’ 등 승차공유 서비스의 경유차량 사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현재 승차공유 서비스에 활용되는 기아자동차의 11인승 카니발은 경유차 모델밖에 없다. 더욱이 타다 등은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 승합차’에 한해 운전자 알선을 허용하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령 예외조항을 활용해 사업을 벌이고 있어 대체 모델을 찾기도 어렵다.

구은서/김재후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