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생산량 사상 최대
㎏당 도매가격 평년 '반토막'
풍년의 역설…농산물값 폭락에 재정부담 커진다

양파와 마늘, 보리 농가는 올해 유례없는 풍년을 맞았다. 하지만 농민들의 시름은 오히려 깊어졌다. 가격이 폭락하면서 흉년 때보다 손에 쥐는 돈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농림축산식품부가 공급량을 줄이기 위해 경작지를 뒤엎고 일부 물량을 사주기로 했다. 몇 년 만에 찾아온 대풍(大豊)이 ‘나라 살림’마저 축내는 셈이다. “앞으로는 ‘풍년이 들지 말라’고 기원해야 할 판”이란 얘기가 농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역대급 풍작’으로 가격 폭락

19일 통계청이 발표한 ‘보리, 마늘, 양파 생산량 조사결과’에 따르면 올해 양파 생산량은 작년보다 4.8% 증가한 159만4450t이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80년 이후 최대 물량이다. 재배면적은 작년보다 17.6%(2만6425㏊→2만1777㏊) 줄었지만 지난 겨울과 봄 날씨가 워낙 좋았던 덕분에 면적당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마늘도 전국에 넘쳐났다. 올해 생산량은 작년보다 16.9% 증가한 38만7671t으로, 2013년(41만2250t) 후 6년 만에 최고 기록을 세웠다. 마늘 역시 재배면적이 2.3%(2만8351㏊→2만7689㏊) 감소했지만 날씨 덕을 봤다. 보리도 똑같은 패턴을 보였다. 재배면적은 전년보다 7.4%(4만7237㏊→4만3720㏊) 감소했지만 생산량은 오히려 32.1%(15만1401t→20만3t) 증가했다.

‘역대급 풍작’은 가격 폭락을 불렀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7월 1~18일 양파 도매가격은 ㎏당 401원으로 평년(877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같은 기간 깐마늘 도매가격은 ㎏당 4380원으로 평년(6289원)보다 30.3% 빠졌다. 보리 가격도 폭락했다. 보리 수요가 갑자기 늘어날 가능성이 없는 데다 국내 농가가 재배한 보리는 맥주 원료로 쓸 수 없기 때문에 과잉 생산된 물량은 사실상 판로가 막힌 것이나 다름없다.

농가 달래려 나랏돈 수백억원 투입

가격 폭락으로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자 농식품부가 나섰다. 농식품부는 일단 과잉 생산된 보리 6만여t을 처리하기 위해 127억원을 추가경정예산안에 넣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보리는 정부 비축 쌀 및 타피오카와 함께 소주의 원액인 주정을 제조할 때 쓰인다.

소주업체들은 주류산업협회를 중심으로 매년 일정 물량을 보리 농가와 계약을 맺고 구매하고 있다. 올해 계약 가격은 40㎏들이 한 포대에 3만3000원(겉보리, 맥주보리)~3만7000원(쌀보리)이다. 나머지는 40㎏에 1만2000원 정도인 타피오카를 원료로 쓴다.

농식품부는 주류업체들이 주정을 만들 때 타피오카 대신 과잉 생산된 보리를 쓰도록 두 곡물의 가격 차이 만큼을 보전해주기로 했다. 농식품부와 각 지방자치단체, 농협이 보리 농가로부터 당초 주류업체와 맺은 계약가 보다 1만원 싼 2만3000~2만7000원에 매입한 뒤 주류업체에 타피오카 가격(1만2000원)으로 되파는 식이다. 여기에 드는 돈 300여억원은 농식품부, 농협, 지자체가 각각 4 대 4 대 2 비율로 분담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농식품부는 마늘과 양파를 일부 사들여 시장에서 격리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마늘은 2만3000t가량을 ㎏당 2300원에 매입할 계획이다. 여기에만 500억원이 넘는 나랏돈이 들어간다. 보관비 등 각종 부대비용을 더하면 전체 투입금액은 더 늘어난다.

양파는 산지에서 폐기처분하는 대가로 농가에 19억3500만원을 준 데 이어 1만2000t가량을 ㎏당 400원 안팎에 사들이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역시 50억원이 넘는 나랏돈이 들어간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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