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사진)이 18일 일본을 찾았다. 정 수석부회장은 일본의 수출 규제가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해 부품 및 소재 공급망을 점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정 수석부회장이 대한양궁협회장 자격으로 도쿄에서 열리는 ‘2019 도쿄올림픽 테스트 이벤트(프레올림픽)’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으로 출국했다”며 “(양궁 관련 행사 외) 다른 필요한 일정도 소화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17일 중국을 찾아 현지 판매 상황 등을 점검했고, 하루 뒤인 이날 곧바로 일본으로 향했다. 이번 일본 출장의 공식적인 목적은 한국 양궁 대표단 격려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선제적 대응을 하기 위해 현지를 찾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현대·기아차는 일본에서 부품이나 소재를 거의 수입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부 협력사가 일본에서 부품과 소재를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차산업 특성상 협력사 일부의 생산 라인이 멈추면 현대·기아차도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 등 동력전달장치)에 들어가는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도 문제다. 자동차용 MLCC는 일본 업체(무라타제작소와 TDK)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핵심 장비인 초정밀 카메라에 탑재되는 광학렌즈 원천기술은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소전기차에 들어가는 수소저장장치를 생산하려면 탄소섬유가 필요한데, 이 시장도 일본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주재 기업인 간담회에서 “자동차에는 3만여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데, 이 중 일부 일본산 부품이 쓰인다”며 “부품 수급체계 다변화 등을 통해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업체처럼 당장 피해를 입을 상황은 아니지만,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 어떤 방식으로 불똥이 튈지 모른다”며 “선제적으로 현지 공급망을 확인하고 부품 및 소재 수급 상황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