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내 제어·멸균기술 등 개발
생선요리도 270일 상온 보관
年 5조원 시장 된 가정간편식…식품산업을 '과학'으로 만들다

생선은 잘 상한다. 냉동·냉장이 아니면 장기 보관이 불가능하다. 그동안 가정간편식(HMR) 생선요리를 찾기 어려웠던 이유다. CJ제일제당은 최근 이 문제를 해결했다. 상온에서 보관이 가능한 생선조림 가정간편식을 내놨다. 전자레인지에 90초 데우면 반찬으로 먹을 수 있다. 270일간 보관할 수 있는 이 제품에는 비린내 제어기술, 멸균기술 등이 적용됐다.

식품업체들의 첨단 기술 경쟁으로 가정간편식이 다양해지고 있다. 급속냉동 삼계탕, 육즙이 살아있는 만두 등이 이 기술 덕에 소비자 밥상에 오르고 있다. 기업들은 특허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식품업 관련 특허와 실용신안 출원 건수는 지난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허청에 따르면 2011년 1407건이던 출원 건수는 2017년 2560건에 달했다. 지난해에는 약 3000건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급성장하는 HMR 시장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HMR 시장은 2012년 9500억원에서 지난해 4조원대로 커졌다. 조리과정이 복잡해 ‘HMR 불모지’로 불리던 한식에 온도와 패키징 기술이 더해지며 시장 규모가 올해 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식품기업들은 공장 건설, 연구개발 시설 확충 등 대규모 투자를 통해 관련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래픽=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그래픽=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발열패드가 굽는 만두, 봉지째 끓이는 삼계탕
기술이 차린 한국인 밥상


하림은 즉석 냉동 삼계탕에 잡은 지 24시간이 지나지 않은 닭만을 쓴다. 이 닭을 갓 끓인 육수와 함께 포장해 영하 35도로 급속 동결한다. 성분의 변화를 막아 육질과 육수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다. 소비자는 그냥 봉지째 끓는 물에 넣기만 하면 집에서 삼계탕을 먹을 수 있다. 이 제품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5~6월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늘었다. 냉동과 특수포장 기술 덕에 삼계탕을 별도의 조리가 필요 없는 가정간편식(HMR)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HMR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식품기업들의 기술 경쟁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하림뿐 아니다. CJ제일제당과 동원F&B, 대상, 풀무원 등은 수십 년간 쌓은 노하우를 HMR에 쏟아부으며 신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식품업은 첨단기술 산업”

年 5조원 시장 된 가정간편식…식품산업을 '과학'으로 만들다

‘즉석 수타면을 능가하는 냉동면, 두께가 0.7㎜까지 얇아진 만두피, 전자레인지에 90초만 데우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돼지고기, 생선구이.’

2, 3년 전만 해도 보기 힘들었던 HMR 제품들이다. 한식은 조리 과정이 복잡해 HMR로 만들기 가장 까다로워 기업들도 쉽게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한식을 HMR로 내놓으면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판단한 식품기업들은 기술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냉장, 냉동, 상온 등 필요에 맞게 다양한 온도에서 유통되는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국내 최대 식품기업 CJ제일제당 경영진은 더 바빠졌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의지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지난 5월 충북 진천의 통합식품기지를 찾아 “식품산업은 더 이상 노동집약적 산업이 아니고 첨단기술 산업”이라며 “기술 기반의 미래 산업으로 키워 한식을 세계인이 먹을 수 있게 하자”고 말했다. 이 회장은 업종 불문하고 기술력 없이 세계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이 같은 방침을 밝혔다.

이 가능성을 보여준 게 냉동만두다. 과거 냉동만두는 해동하면 퍽퍽해지고 육즙은 사라졌다. CJ제일제당은 ‘비비고 만두’로 이 상식을 깼다. 만두피에는 손으로 빚은 것 같은 기술을 적용했고, 쪄낸 즉시 냉동해 육즙과 식감을 살렸다.

시장이 커지면서 후발주자들도 기술 경쟁에 뛰어들었다. 풀무원은 업계 평균 피 두께인 1.5㎜의 절반 수준인 0.7㎜ 만두피를 1년6개월 만에 개발해 내놓기도 했다. 동원F&B는 통새우가 들어간 해산물 만두로 승부하고 있다.

맛을 살리는 패키징 기술

패키징 기술 경쟁도 치열하다.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맛이 그만큼 변하지 않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은 사각형으로 시작했던 햇반 패키지를 ‘밥공기 문화’에 맞춰 둥근 모양으로 바꿨고, 수십 차례 변형 끝에 지금의 디자인을 완성했다. 고열 고압으로 찐 쌀을 무균 포장한 뒤 3중 재질의 그릇에 담고, 비닐 덮개는 4중 특수 필름지를 사용한다. 100도 이상 온도에서도 성분이나 외형이 변하지 않는다. 용기 바닥 부분은 주름이 잡혀 있고, 아래는 오목해 전자레인지의 열이 골고루 빠르게 전달된다.

발열 패드도 개발됐다. 발열 패드는 전자레인지의 파장을 열에너지로 바꿔 음식이 더 바삭하게 구워지도록 한다. 신세계푸드는 전자레인지 전용 군만두 ‘갓구운만두’ 제품에 발열 패드를 적용하고 있다. 전자레인지에서 1분40초간 데우면 바닥의 발열 패드가 최고 200도까지 올라 프라이팬에서 구운 것처럼 구워진다. CJ제일제당도 피자 제품에 ‘고메 바삭판’을 적용해 눅눅하지 않은 피자를 만들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패키징 관련 연구원만 30명 이상이고, 연간 10억원 이상을 투자한다”며 “포장 선진 기술을 가진 일본이 테스트를 의뢰하거나 제품을 벤치마킹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소비 트렌드 변화

HMR이 간식에서 주식으로 변하고, 조리기기가 다양해지면서 전용 상품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에어프라이어와 전자레인지 전용 제품이 대표적이다. 통조림에 갇혀 있던 수산물은 전자레인지 조리가 가능한 HMR 패키지로 재탄생했다. 또 간편하게 한 끼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제품도 크게 늘었다. HMR 상품 특허 및 상표 출원 현황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가장 빠르게 성장한 제품군은 국물요리 제품군과 냉동면, 조리된 피자 순이었다.

빵 전문 브랜드이던 SPC삼립은 지난해 본격적으로 밥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단열과 보온성이 뛰어난 친환경 PET 용기를 개발했다. 오야코동, 오징어 삼겹덮밥, 비프 함박 스테이크덮밥 등을 편의점 제품으로 내놨다. 또 밥에 바로 올려 먹을 수 있는 고기덮밥 소스를 담은 한돈 ‘육식본능’도 출시했다.

‘혼술’과 ‘홈술’ 트렌드는 까다로운 돼지 부산물도 HMR 시장으로 끌어들였다. 대상은 막창, 곱창, 닭발, 돼지껍데기를 커다란 솥에 넣고 볶는 직화 공정으로 만든 ‘안주야’로 시장을 이끌고 있다. 문경선 유로모니터 식품영양부문 수석연구원은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냉장 냉동 안주류와 육가공품 시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며 HMR 시장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