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 보복이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를 넘어 자동차·기계 산업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이미 한국 주력 업종과 대표 기업들의 ‘급소’를 파악하는 작업을 마쳤다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관련 업계에는 태풍 전야의 긴장감이 돌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 등 동력전달장치)에 들어가는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시장을 일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어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MLCC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반도체 등의 부품이 필요로 하는 만큼 공급하는 ‘댐’ 역할을 한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TV, 가전 등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 쓰여 반도체와 함께 ‘산업의 쌀’로 불린다.

자동차 파워트레인에는 MLCC 중에서도 높은 사양의 제품이 장착된다. 내연기관차 파워트레인에는 400~600개, 전기자동차 제품에는 3000개가량의 MLCC가 들어간다. 자동차의 전장(전기·전자장치)화가 빨라지면서 수요는 더욱 급증하고 있다. 전기차 1대에는 파워트레인을 포함해 1만5000개 이상의 MLCC가 들어간다. 스마트폰(1000개), TV(2000개) 등에 비해 훨씬 많다. 삼성전기가 중국 톈진에 자동차 전장용 MLCC 공장을 짓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수요 때문이다.

자동차 파워트레인에 들어가는 MLCC는 일본 무라타제작소와 TDK가 세계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무라타 본사 앞 호텔에는 세계에서 몰려든 구매 담당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파워트레인용 MLCC는 무라타와 TDK가 세계 시장의 100%를 점유하고 있어 대체가 어렵다”며 “일본이 핀셋으로 집듯이 한국 완성차 업체를 겨냥해 수출을 규제하면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핵심 장비인 초정밀 카메라에 들어가는 광학렌즈 원천기술도 일본이 보유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가 최근 내놓은 ‘일본 수출규제와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수소차에 들어가는 화학소재를, 쌍용자동차와 르노삼성자동차는 핵심 부품인 변속기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기계업계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삼성증권이 관세청의 지난해 통계를 분석한 결과 한국 특수목적기계와 일반목적기계 산업의 대일 의존도(전체 수입 중 일본 수입 비중)는 각각 32.3%, 18.7%였다. 유승민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조만간 일본이 추가 제재를 통해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것”이라며 “반도체에 이어 자동차와 기계가 다음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박상용/이호기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