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대국민 담화’를 위해 마이크를 잡은 건 지난 4월 9일이었다. “치사율이 높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유입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그의 발언이 알려지자 시장에서 “삼겹살 한 근에 10만원 시대가 올 것”이란 얘기가 나돌았다. 딱 3개월이 흐른 지난 10일 이 장관은 정반대 내용을 국민에게 호소하기 위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장소는 ‘한돈 소비촉진행사’가 열린 국회의원회관. 그는 “돼지고기 가격 하락으로 한돈 농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삼겹살 소비를 늘려달라고 읍소했다.

삼겹살 한 근에 10만원 간다더니…돼지고기값 폭락, 왜?
아시아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ASF에도 불구하고 국내 돼지고기 가격은 하락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삼겹살 성수기인 6~7월에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가량 빠지자 한돈협회는 부랴부랴 ‘어미 돼지(모돈) 사육두수 감축’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15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달 국내산 돼지고기 도매가격은 ㎏당 4100~4300원으로 작년 7월(5120원)보다 16~20% 떨어질 것으로 추정됐다. 올 상반기 평균 도매가격도 4200원 안팎으로 전년보다 10% 이상 내려갔다. 세계 돼지고기 소비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에서 작년 8월 ASF가 발생한 여파로 지난달 중국과 유럽연합(EU) 돼지 도매가격이 각각 26.9%와 20.8% 오르는 등 국제 시세가 급등한 것과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돼지고기 가격 미스터리’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공급은 늘었는데 수요가 줄어든 것으로 모든 게 설명된다. 최근 몇 년간 국내 돼지고기 도매가격이 ㎏당 5000~6000원대로 높게 형성되자 농가들은 돼지고기 사육두수를 크게 늘렸다. 현재 사육두수는 약 1150만 마리로 5년 전인 2014년 6월(955만 마리)보다 200만 마리나 많다. 여기에 수입 물량도 늘면서 전체 공급량이 확대됐다. 반면 수요는 줄어들고 있다. 작년부터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되면서 ‘삼겹살에 소주’로 대표되던 회식 문화가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수입 소고기를 찾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돼지고기 수요 감소에 영향을 줬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이에 따라 오는 8월부터 연말까지 돼지고기 도매가격이 작년 같은 기간(㎏당 4123원)보다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ASF가 국내에 상륙하지 않는 한 돼지고기 가격 하락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얘기다.

문제는 수요를 늘릴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국민을 상대로 한 ‘소비 확대 캠페인’은 효과가 떨어진다. 한국은 ‘구제역 청정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중국 등 해외에 수출할 수도 없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한돈협회 주축으로 107만 마리 안팎인 모돈의 10%가량을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일각에서 제안한 북한에 돼지고기를 주는 방안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