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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기업들이 파격적인 조직문화 혁신에 나서고 있다. 수직적인 소통 구조는 점점 수평 구조로 바뀌고 있다. 안정성과 규모의 경제에 무게를 두던 조직 구조는 민첩하고 유연한 조직으로 바뀌고 있다. 이 같은 조직 문화 혁신이 없으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김 과장’에서 ‘김 프로’로 바뀐 호칭

우선 직급 체계부터 달라지고 있다. 연공서열주의를 깨고 업무와 전문성을 중시하는 체계로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는 기존 7단계(사원1·사원2·사원3·대리·과장·차장·부장)에서 4단계(CL 1~4)로 직급 단계를 단순화했다. SK그룹은 올 하반기 임원 직급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부사장·전무·상무 구분을 없애고 임원은 동급이 된다. 호칭도 본부장·실장 등 직책으로만 부른다. 경직된 한국식 직급 문화에서 벗어나 임원을 관리자보다 핵심 플레이어로 활용하려는 취지다.

기업들 4차 산업혁명 '조직문화 혁신'부터 시작한다
임직원 사이의 호칭에도 변화가 생겼다. 삼성그룹에서 임직원 간 공통 호칭은 ‘님’이다. 부서 내에선 ‘프로’, ‘선배님’, ‘후배님’, 영어 이름 등이 자율적으로 쓰인다. SK텔레콤도 작년 1월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호칭으로 통일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월부터 선임·책임·수석으로 나뉘어 있던 기술사무직 전 직원의 호칭을 TL로 통일했다. 기술(technic)과 재능(talent) 등 중의적 의미를 담은 호칭이다.

소통 방식도 수평적이고 효율적으로 바뀌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라운드테이블 미팅이 대표적이다. 수출 확대 및 경영전략, 상품 회의 등 매달 열리는 정기 임원회의와 달리 이 모임엔 특별한 안건이 없다. 차를 마시며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등 업(業)의 본질과 관련한 질문 및 토론이 자유롭게 이어진다. 이 외에도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9월 그룹 경영을 도맡은 이후 다양한 조직 혁신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10대 그룹 중 처음으로 정기공채를 없앴고, 완전 자율복장제도도 도입했다. 청바지와 후드티를 입고 출근하는 임원도 흔히 볼 수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직원 직급을 5단계에서 2단계로 줄이는 방안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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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있는 삶’ 만들기에도 ‘집중’

기업들의 조직문화 혁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녁이 있는 삶’과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일터로 바꾸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우수한 인재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대표적이다. LG전자 직원들은 하루 근무시간을 최소 4시간에서 최대 12시간까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내 근로자들의 근무시간을 기존보다 30분씩 앞당겨 오전 8시30분~오후 5시30분으로 조정했다. 삼성전자는 자율출퇴근제를 운영하고 있다. 하루 4시간 이상, 1주 40시간 이상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근무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재택근무제’도 시행 중이다.

여성 직장인의 근무 조건에도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 LG전자는 출산휴가(90일) 이전의 임신기간 중 희망하는 여사원에 한해 최장 6개월간의 무급 휴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육아휴직 또는 근로시간 단축 근무 가운데 선택할 수도 있다. 근로시간 단축 근무는 6세 이하 초등학교 취학 전 자녀가 있는 여직원에 한해 최대 1년 동안 주 15~30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유급 3일의 난임 휴가, 유급 10일의 배우자 출산 휴가 등을 통해 직원들의 출산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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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눈치를 보고 휴가를 가는 일은 옛말이 돼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팀장 결재 없이 ‘본인 기안 후 본인 승인’ 절차를 통해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휴가 신고제’를 운영 중이다. SK텔레콤도 ‘휴가 셀프 승인’ 제도를 통해 구성원 본인의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충전을 위한 장기 휴가를 운영하는 회사도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근무일 기준 5~10일, 주말 포함 시 최대 16일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빅 브레이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의 조직문화 혁신 바람이 중견·중소기업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라며 “다만 수직적인 구조는 나쁘고 수평적인 구조는 좋다는 이분법적인 접근법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근무 환경을 개선하면서 임직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끌어올리고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한국식 조직문화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