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를 여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을 지속할 준비만 돼 있다면 낯섦, 불편함, 혼돈은 진정한 여행의 기쁨을 주는 축복으로 변할지 모른다.

무엇보다 이방인을 활짝 웃으며 맞는 순박한 사람들이 있다.

도시의 길거리, 관광지, 어디서나, 만나는 사람마다 기념사진을 찍고 싶어 야단이다.

여행하는 외국인은 마치 BTS의 멤버라도 된 듯하다.

[travel abroad] '마지막 오지' 방글라데시

◇ 미지의 세계 그리고 마르코 폴로

마르코 폴로의 동방 여행은 서방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무더위와 사나운 맹수, 각종 질병의 매개체가 되는 벌레들, 서양인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동양의 풍습 등을 겪고 돌아와 동방견문록을 썼다.

반응은 뜨거웠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었을까? 불안이었을까?
그로부터 700여년이 흐른 지금, 지구에서 여행자들이 찾지 않던 미지의 세계가 남아있다면, 아마도 가까운 아시아에서는 방글라데시 정도가 아닐까.

영국령이던 인도가 1947년 독립할 때 이슬람교도로 이뤄진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했다.

이후 벵골어를 쓰는 동파키스탄인들은 서파키스탄인들의 박해에 반발해 독립을 추진했고 1971년 12월 마침내 방글라데시를 건국했다.

방글라데시의 공식 인구는 현재 1억5천900만 명이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최빈국 중 하나인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곳 방글라데시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느낌은 마치 마르코 폴로가 된 듯한 것이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수많은 현지인의 환대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travel abroad] '마지막 오지' 방글라데시

◇ 비포장도로와 배탈

외국을 여행할 때 가장 나쁜 시작은 새벽에 입국하는 것이다.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태에서 고스란히 여행의 첫날을 시작해야 한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 도착해 피곤한 몸으로 시작한 하루는 고단한 방글라데시 여행의 예고편인 듯했다.

이튿날 다른 지역을 향해 다카를 떠나니 그제야 방글라데시에 온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행상들과 우마차, 염소 떼와 아낙네들, 인력거들과 학생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길거리는 혼돈 그 자체였다.

다카에서 멀어질수록 환경은 더 나빠진다.

포장도로라고 하지만 실상은 비포장보다 못한 곳이 적지 않다.

곳곳에 있는 포트홀이 크고 작은 충격으로 몸을 피곤하게 했고 당연히 이동 시간은 정상적인 포장도로의 서너배 이상 걸렸다.

길은 어느덧 비포장으로 바뀌어 있었고, 어떤 때에는 온종일 비포장길을 달리기도 했다.

비포장도로를 벗어났다 싶으면, 이번엔 큰 포트홀이 많은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상태가 좋지 않은 포장도로는 비포장길보다 더 나쁘다.

바닥을 '땅땅' 때리는 충격이 그대로 몸으로 전해졌다.

차량 트렁크 안에 든 노트북 등 전자 제품들이 충격을 이길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다.

다카 서북부 지역의 푸티아(Phutia) 부근에서는 버스가 춤을 추듯 달렸다.

도로 확장공사 중인 듯했는데 도로가 너무 막히니, 우리 일행이 탄 버스가 역주행을 시작했고, 맞은 편에서 오던 버스와 마주 서 꼼짝도 못 한 채 길에 갇혀 있기도 했다.

그것도 버스 뒤 범퍼가 땅바닥에 닿을 만큼 땅이 팬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상황이 이러니 예상 도착시각은 늘 빗나갔고 자연히 스케줄은 자꾸만 뒤처졌다.

또 한가지 여행자들을 괴롭힐 수 있는 것은 음식이다.

방심하면 쉽게 배탈이 날 수 있다.

끓이거나 튀긴 음식을 먹는 것이 안전하다.

화장실 환경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물과 음식은 끓인 것만 선택했고, 되도록 음식은 많이 먹지 않았다.

그런데도 순간 방심하는 바람에 배탈이 나버렸다.

식은땀을 닦고 다시 식탁에 앉아 아닌 척하며 식사를 계속했다.

[travel abroad] '마지막 오지' 방글라데시

◇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내륙 투어를 마치고는 다카에서 다시 동쪽 해안에 자리 잡은 도시 콕스바자르(Cox's Bazar)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을 때다.

프로펠러 비행기 소리는 드라마틱하다.

출발 직전에 엔진 소리가 점점 커진다.

비행기 창문으로 끝도 없이 펼쳐진 해안선과 그곳에 늘어선 파라솔이 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긴 120㎞의 해변을 가진 곳이었다.

세계 3대 생선 수출국이라더니 공항에 내리자마자 생선 냄새가 코를 찌른다.

[travel abroad] '마지막 오지' 방글라데시

특이한 것은 비행기 수하물은 컨베이어 벨트가 아니라 공항 바깥 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수하물을 출구 앞에 쏟아 놓으면 승객들이 알아서 자기 수하물 찾는 식이다.

수하물 분실 사고를 막기 위해 공항 직원이 수하물 태그와 가방을 일일이 비교하니 수하물 태그 챙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콕스바자르에서 차로 40분가량 걸리는 한 리조트에 여장을 푼 뒤 바로 선셋을 볼 수 있는 장소로 갔다.

한 해변에 내려 초승달 모양의 방글라데시 전통 목선인 문 보트(Moon Boat)를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한 젊은 아버지가 딸을 데리고 그물질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전통 어선 옆에 선 아버지와 딸은 마치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라는 번안 가요의 노랫말을 떠올리게 했다.

원래 노래인 '클레멘타인'(Clementine)의 아버지는 황금을 좇는 광부였지만, 번안 가요에서는 어부로 둔갑했다.

어쨌든 때마침 황금빛 석양을 배경으로 그물질하는 부녀의 모습은 딱 노랫가락의 주인공이었다.

경치에 감탄하고 있는데 부녀가 나를 향해 다가와 주저주저 손을 내민다.

돈을 요구하는 것 같았는데 그 모습이 강압적이지도 않고, 부탁하는 느낌이라 흔쾌히 100타카를 줬다.

주고 나서 가만 생각하니 1천400원쯤 되는 금액이다.

그들의 소박한 태도 때문인지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travel abroad] '마지막 오지' 방글라데시

곧이어 얕은 바닷물 속에서 전봇대 같은 말뚝을 어깨에 걸치고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사람들이 보여 셔터를 눌렀다.

그들이 가까이 왔을 때 깜짝 놀랐다.

초등학생 정도밖에 안 되는 개구쟁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어깨에 멘 말뚝은 고기잡이 그물을 고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무엇을 잡기 위해 그물을 쳤느냐고 손짓과 발짓을 동원해 물어봤더니 멸치보다도 더 작은 물고기를 보여준다.

그리고는 까르르 웃는다.

[travel abroad] '마지막 오지' 방글라데시

자기 키의 2배쯤 되는 큰 나무기둥을 옮기던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수줍게 웃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니 맘 깊은 곳에서 무언가 정화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해가 지고 난 뒤 식사하기로 한 약속 장소 '말멧이뚜 리솔' 식당을 아무리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찾고 보니 인어를 뜻하는 '머메이드 리조트'(Mermaid Resort)의 현지 발음이었다.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된 리조트는 럭셔리했다.

참고삼아 1박 가격을 물어봤더니 3만5천타카(49만원 상당)가량이라 한다.

무거운 그물을 들고 환하게 웃던 여자아이의 얼굴이 자꾸 맘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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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그들, 방글라데시인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가 전 세계 1위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부터 20년 전인 1998년 영국 런던정경대(LSE)의 로버트 우스터 교수가 세계 54개국을 대상으로 국민 행복도를 조사했는데, 빈곤국으로 분류되는 방글라데시와 아제르바이잔, 나이지리아가 1, 2, 3위를 차지했다.

당시 조사에서 미국을 비롯한 G7 국가는 상위권에 들지 못했다.

이때부터 '방글라데시=행복지수 1위'라는 등식이 회자됐다.

과연 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방글라데시를 다녀온 뒤 행복지수의 반대 개념인 자살률을 알아봤다.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방글라데시 남성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당 5.5명이다.

같은 해 한국 남성의 자살률은 29.6명에 달했다.

행복지수뿐만 아니라 자살률 면에서도 방글라데시가 우리보다 낫다.

[travel abroad] '마지막 오지' 방글라데시

모든 면에서 방글라데시와 비교할 수 없이 깔끔한 한국의 거리로 돌아오니 무표정하거나 잔뜩 찌푸린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의 메마른 얼굴을 마주하면서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순박하고 행복에 찬 미소가 떠올랐다.

불교유적지가 있는 파하르푸르에서 만난 한 노점상의 아이와 같은 눈빛, 고기잡이 나무기둥을 들고 걸어가던 여자아이의 수줍은 미소, 황금빛 석양을 등 뒤로 그물질하던 부녀의 행복한 얼굴.
행복이 주관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하면 그런 눈빛과 미소를 얼굴에 담을 수 있는 건지. 방글라데시 여행에서 얻은 궁금증은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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