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4곳 중 1곳은
여전히 '직감'으로 의사 결정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왼쪽)이 11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파르나스호텔에서 열린 ‘SAP 이그제큐티브 서밋’에서 제니퍼 모건 SAP 클라우드비즈니스그룹 회장과 토론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왼쪽)이 11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파르나스호텔에서 열린 ‘SAP 이그제큐티브 서밋’에서 제니퍼 모건 SAP 클라우드비즈니스그룹 회장과 토론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만족할 만한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면 고객은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직원은 회사를 떠납니다.”(제니퍼 모건 SAP 클라우드비즈니스그룹 회장)

“2만 개의 부품이 있다고 자동차를 아무나 만들 수는 없습니다. 쏟아지는 데이터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인 빅데이터 분석에서 ‘경험 데이터’가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험 데이터는 고객 및 회사 직원의 구매, 업무 과정에서 발생한 구체적인 디지털 데이터를 뜻한다.

11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파르나스호텔에서 열린 ‘SAP 이그제큐티브 서밋’ 연사로 나선 국내외 정보기술(IT) 관련 기업인들은 경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경험 경제’가 향후 모든 기업의 성장을 결정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빅데이터의 변화 ‘엑소 데이터’

제니퍼 모건 회장은 “지금까지 상당수 기업은 대량의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잘 파악하고 있다”며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려면 데이터 양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대신 모건 회장은 경험 데이터를 확보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빅데이터 분석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통 빅데이터 분석은 고객 수, 거래액 등과 같은 ‘운영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데이터 양은 많지만 데이터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기업들이 빅데이터 분석을 위해 필요 이상의 정보를 수집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기업 네 곳 중 한 곳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직감에 의해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정보 찾기가 더 어려워지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나온 방법이 경험 데이터 분석이다. 회사 직원과 고객이 실제 현장에서 겪은 경험을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로 구체적으로 파악해 문제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장을 방문한 손님이 물건을 살 때까지 몇 번을 둘러보는지를 파악하는 게 경험 데이터다. 경험 데이터와 운영 데이터를 모두 활용하면 기업에 닥친 문제를 훨씬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경험 데이터(experience data)와 운영 데이터(operation data)를 합친 ‘엑소(XO) 데이터’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경험 데이터 기반한 새 비즈니스

경험 데이터를 활용해 탄생한 업체들이 우버 등 새로운 모빌리티(이동수단) 기업들이다. 미국의 경험 데이터 전문 기업 퀄트릭스의 라이언 스미스 대표는 “이전에는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아야 하고 현금으로 대가를 지급하는 등 택시 이용 경험이 좋지 않았다”며 “내가 집에서 나가면 바로 택시가 왔으면 하는 생각에서 우버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미국 이동수단 중 한때 87%였던 택시 비중은 6%까지 떨어졌다.

스미스 대표는 “제품 디자인, 매장 분위기 등에 집중한 애플과 스타벅스도 경험 데이터를 잘 활용한 기업”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미국의 넷플릭스, 한국의 토스, 중국의 알리페이 등도 경험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사용한 업체로 꼽았다.

정태영 부회장도 경험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현대카드를 제일 모르는 건 최고경영자(CEO)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제가 (카드 서비스를) 만들었으니까 당연히 잘 알고 있지만 고객들이 쓰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카드는 데이터 분석 방식을 개선해 소비자가 3개월 안에 결혼할 가능성도 예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10년 뒤에는 모든 고객의 취향을 알지 못하는 기업은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험 데이터 확보에 수조원 투자

경험 데이터 확보와 분석에 관심이 쏠리면서 글로벌 IT 기업들은 이 분야에 수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전사적자원관리(ERP)업계 1위인 SAP는 물론 어도비, 세일즈포스 등 글로벌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경험 데이터를 확보하려고 대규모 인수합병(M&A)에 나섰다.

SAP는 지난해 11월 퀄트릭스를 80억달러(약 9조3840억원)에 인수했다. 어도비는 작년 5월 고객 경험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용 전자상거래 솔루션업체인 마젠토를 16억8000만달러(약 1조9706억원)에 사들였다. 세일즈포스도 지난해 3월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 데이터 통합 업체인 뮬소프트를 65억달러(약 7조6245억원)에 인수했다.

데이터 공유를 위해 경쟁업체끼리 손을 맞잡기도 한다. SAP와 어도비,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해 9월 ‘오픈 데이터 이니셔티브(ODI)’를 발표했다. ODI는 단일 데이터 표준을 구성해 세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를 서로 공유하는 협력체다.

■경험 경제

experience economy. 고객의 경험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하는 기업 운영 방식. 경험 데이터는 성별, 나이 등 고객의 단순 정보 수준을 넘어 제품 및 서비스 구매 만족도·구매 의향 등까지 심층 조사하고 분석한 디지털 정보다. 이를 활용한 제품과 서비스의 개선 극대화로 기업 성장을 이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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