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4류 정치·3류 관료

中 이어 日 보복에 '동네북'
"소재·부품 안키우고 뭐했나"
기업 탓하는 정치인·관료들
“한국 정치는 4류고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특파원들에게 한 말이다. 기업인을 죄인 취급하는 정치권과 ‘규제 폭탄’을 쏟아내는 정부를 겨눈 날선 비판이었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4류’와 ‘3류’는 그대로라는 지적이다. “한국에서 기업하는 고단함은 되레 더 커졌다”는 토로가 끊이지 않는다. “정치가 경제를 좀 놔줄 때가 아니냐”(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는 호소가 터져나올 지경이다.

정치에 발목 잡힌 ‘한국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최근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규제 ‘쇼크’가 대표적 사례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촉발된 사태가 한·일 정부와 정치권의 싸움으로 번지면서 애먼 기업들만 피해를 볼 판이다. 한두 달 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장이 멈춰설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반도체 생산이 30% 줄면 한국은 약 40조원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손실을 입을 것이란 암울한 전망(한국경제연구원)까지 나온다.

이 와중에 ‘정치’는 ‘경제’ 탓만 하고 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삼성전자 같은 회사가 오히려 일본 업계를 1위로 띄워 올린다. 한국 (반도체 소재·부품) 기업에는 거의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기업들이 각성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날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인 초청 간담회에서 “기업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경제계에선 “기업들이 전선(戰線)에 서라는 얘기냐”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11일엔 “대기업이 기술 탈취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조배숙 민주평화당 의원)는 비난까지 가세했다. ‘대기업이 소재·부품 사업을 제대로 키우지 않아 일본에 경제 보복을 당했다’는 황당한 논리로 기업들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해외서 피터지게 싸워 경제 이만큼 키웠는데 안에서는 터지기 일쑤"

2년 전 중국의 ‘사드 보복’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기업들은 만신창이가 됐는데도 정치권에선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어이없는’ 말만 주고받았다.

경제계에선 “한국에서 기업하기 정말 괴롭다”는 탄식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 등 친노동정책이 쉴 새 없이 쏟아지면서다. 탈원전 등 ‘일방통행’ 정책과 툭하면 공장을 멈춰야 하는 산업안전법 등 ‘규제 쓰나미’도 산업 현장을 뒤흔들고 있다.

이 판국에 노동조합, 시민단체들은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 주요 기업 본사 앞에서 현수막을 내걸고 집회를 벌이고 있다. 기업 총수 집 앞까지 점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 대기업 임원은 “기업들은 해외에서 (글로벌 경쟁사들과) 피 터지게 싸워 반도체와 조선, 자동차산업 등을 일궈냈는데 무슨 죄인지 (나라) 안에선 맨날 터지기만 한다”며 “(나라) 안과 밖에서 동시에 싸워야 하는 상황이 수십 년째 되풀이되고 있다”고 탄식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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