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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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1시 서울 망원동 ‘어라운드 그린’이라는 채식 전문점을 찾아갔다. 허탕이었다. ‘식재료 소진으로 조기 마감한다’는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열 자리 남짓한 공간은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간판도 없는 가게에 입소문만으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음식점과 서비스도 늘어나고 있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채식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과거 종교적인 신념 또는 몸매 관리 수단이라고 인식됐던 채식이 건강식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데 따른 것이다.

서울 채식 음식점 어디어디에

채식주의는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 위주로 식생활을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이들은 섭취하는 음식의 범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채식주의자의 대명사 ‘비건’은 모든 육류와 해산물을 먹지 않고 모피와 가죽 등 동물성 제품과 벌꿀까지 거부한다. 닭고기를 제외한 모든 육류만을 피하는 사람은 ‘폴로’ 베지테리언이라고 부른다.

이들을 위한 채식 전문점이 전국에 300개 정도 영업 중인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주로 서울에 집중돼 있다. 서울 인사동에 있는 ‘오세계향’은 12년째 달걀, 우유를 넣지 않은 비건 한식을 팔고 있다. 콩비지찌개와 들깨국수를 비롯해 식물성 단백질 ‘콩고기’로 만든 스테이크, 불구이덮밥 등을 판다. 성북동의 ‘리틀마나님’은 채소를 우려낸 국물로 떡국과 국수를 만들어 판다. 따로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판이 마련된 태국음식점 ‘꿍탈레’, 콜롬비아 출신 요리사가 음식을 만드는 ‘남미플랜트랩’도 이색 메뉴를 즐길 수 있는 채식 식당으로 꼽힌다.

채식주의자를 위해 달걀과 유제품을 쓰지 않는 빵집도 있다. 서교동 ‘야미요밀’은 채식주의자 사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베이커리다. 밀가루 대신 쌀가루를 사용하고 계란, 우유를 넣지 않은 빵을 판다. ‘빵어니스타’는 여의도와 연남동, 신사동 등 세 곳에 점포를 운영하는 채식 베이커리다. 설탕 대신 코코넛 슈가로 단맛을 내는 게 특징. ‘단호박모찌타르트’가 인기 메뉴다.
채식 인구 10배↑…'비건' 음식점 늘고 농심·동원 등 대기업도 '군침'
‘비건 화장품’도 등장

한국채식협회는 국내 채식주의자 수를 150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2008년 15만 명에서 10배가량 늘었다. 채식주의자가 늘자 전통 식품업체들도 채식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동원F&B는 미국 식물성 고기 전문업체 비욘드미트의 제품을 국내에 들여다 팔고 있다. 농심 계열사인 태경농산은 고기를 사용하지 않은 채식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온라인 푸드마켓 헬로네이처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전문 카테고리를 따로 마련하기도 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서비스도 다양해지고 있다. 해피카우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앱(응용프로그램)이다. 이 앱을 내려받은 사람은 안드로이드마켓에서만 100만 명이 넘었다. 이달 말에는 ‘비밀’이라는 비건 상품 전용 온라인 쇼핑몰도 문을 연다. 전문가들이 직접 선별한 채식주의자를 위한 음식을 팔 계획이다.

비건 화장품도 등장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비건 화장품 브랜드 ‘아워글래스’는 2020년까지 100% 비건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건강을 생각해 채식을 늘리는 트렌드와 맞물려 비건산업은 계속 확대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안효주 기자/신지혜·성상훈 인턴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