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악화때마다 일본산 불매운동
'제품 하자' 아닌 '감정 대립' 치중 문제
불매운동으로 일본車 예약취소 없어
일본, 더 강한 규제 돌입할수도
민간 아닌 정부가 문제 해결해야
[이진욱의 카센타] 일본車 불매운동…역효과 우려되는 이유

한일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우리나라에선 일본산 제품 불매 운동이 단골 메뉴처럼 등장했다. 하지만 단 한번도 효과를 보진 못했다. 대표적으로 일본 시마네현이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는 조례를 제정한 2005년에도, 아베 정부가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정부 관료를 파견한 2013년에도 일본 불매운동이 있었지만, 자동차를 포함한 일본 제품들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불매운동도 비슷한 양상을 띈다. 일본은 지난 4일 “국가 사이 신뢰에 금이 갔다”며 핵심 전자 소재를 한국에 수출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기엔 국내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소재가 포함됐다. 지난해 10월 있었던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적 보복 조치라는 분석이 많았다.

이에 청와대 국민청원과 일부 온라인 게시판을 중심으로 일본산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그러나 큰 효과는 없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예전 불매운동 실패를 답습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지난 주말 코엑스에서 열린 ‘2019 서울 사케 페스티벌’에는 5000명이 몰렸다. 2만5000원의 입장료도 이들을 막진 못했다. 페스티벌에서 이틀간 소매용으로 준비한 술이 첫날 매진돼 추가 반입했을 정도다.

이런 현상은 한국 내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도 드러났다. 불매운동 초기여서 시장 분위기를 주시하고 있지만, 판매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걱정하는 업체는 거의 없다. 지난 수십년간 반복된 상황을 통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이 불 붙은 이번주 초 렉서스, 도요타, 혼다 등 주요 일본 자동차 매장을 둘러봐도 이번 불매운동 여파로 예약 취소를 한 사례는 없었다. 오히려 지난해 이맘때보다 판매가 늘어난 곳이 더 많았다.
[이진욱의 카센타] 일본車 불매운동…역효과 우려되는 이유

일본 불매운동이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일본 불매운동의 시발점이 '제품 하자'가 아닌 '감정 대립'에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소비의 대상인 제품은 문제가 생길 경우 기업 이미지까지 깎아내린다. 제품에 대한 불신은 판매량과 직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엔진 화재로 물의를 일으켰던 BMW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와 달리 감정이 앞선 불매 운동은 일시적 경향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제품 소비가 아니라 생산 주체에 대한 악감정에 초점이 맞춰져 변화할 여지가 충분히 있단 얘기다.

감정이 앞서니 타깃도 잘못 잡혔다. 미쓰비시같은 전범 기업은 그렇다쳐도 도요타, 혼다, 닛산같은 업체들은 왜 불매 리스트에 포함된 걸까. "일본이 한국을 공격했으니 한국 국민이 일본 기업을 공격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논리인데, 이는 맞지 않다. 일본은 국가다. 국가 운영의 주체는 기업이 아닌 정부다. 이번에 수출 규제를 결정한 것은 아베 내각이지, 애먼 민간 기업들이 아니란 말이다.

전문가들은 정치 외교면에서 빚어진 일은 정부가 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민간 주도의 불매 운동은 역효과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일본에서는 한국의 불매운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온라인 게시판에는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일본의 정치인들이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한국에 대해 더 강한 수출 규제 드라이브를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규제에 타격을 입는 한국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감정적 대응으로 피해를 입는 쪽은 한국의 민간 기업들. 결국 우리 국민이다.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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