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최대 은행으로 한때 세계 최대 투자은행(IB)을 노렸던 도이체방크가 실적 부진으로 인한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다. 20년 전 뱅커스트러스트를 인수하면서 강화하고자 했던 투자은행 부문을 대폭 줄이는 게 골자다.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도이체방크는 이날 직원 20% 감원, 투자은행 부문 대폭 축소 등 고강도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8일부터 2022년까지 직원 1만8000명을 감원한다. 감원 조치가 끝나면 도이체방크 직원은 기존 9만2000명에서 7만4000명 수준으로 줄어든다. 도이체방크는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향후 3년간 60억유로(약 7조9500억원) 가까운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은행 부문도 확 줄인다. 글로벌 주식 매매·트레이딩사업부를 사실상 없앤다. 글로벌 주식 거래와 관련해선 총액인수 등 일부 서비스만 남길 계획이다. 투자은행 부문 자산은 대차대조표상으로 40% 이상 축소한다. 부실자산 740억유로(약 97조6000억원)를 처리하기 위한 ‘배드뱅크’도 만든다.

고위급 경영진도 교체된다. 지난 5일 가스 리치 투자은행 부문 대표가 사임했고 프랑크 슈트라우스 소매금융 대표, 실비 마더랫 최고규제책임자(CRO)도 이달 내 자리를 떠난다.

도이체방크는 2022년까지 구조조정에 74억유로(약 9조7600억원)가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2분기 28억유로(약 3조8000억원)의 순손실을 낼 것으로 추산했다. 비용 보전을 위해 올해부터 내년까지 투자자 배당금 지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크리스티안 제빙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도이체방크가 수십 년 만에 근본적인 변화 방안을 내놨다”며 “명성을 회복할 각오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이체방크는 1870년 설립 이래 세계 외환거래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며 한때 세계 최대 은행을 넘봤다. 1999년엔 미국 뱅커스트러스트를 인수해 월스트리트에 진출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투자은행 부문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연이은 비리 혐의와 스캔들도 발목을 잡았다. 주택담보증권(MBS) 판매 과실로 미 정부에 72억달러의 벌금을 냈고, 이외에도 러시아 돈세탁 혐의로 6억달러가량의 벌금을 납부했다. 금리 조작에 가담한 혐의로는 미국과 영국에 25억달러가량의 벌금을 냈다.

지난 4월엔 독일 2위 은행 코메르츠방크와 합병을 논의했으나 무산됐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구조조정안은 도이체방크가 오랫동안 꿈꿔온 ‘세계 최대 투자은행’이란 야심을 접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