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이 심각한 생산 차질에 직면한 가운데 일본과의 소재·부품 교역에서 발생하는 적자가 최근 5년간 9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재·부품 對日 무역수지, 5년간 90조원 적자
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일본과의 소재·부품 교역에서 151억달러(약 17조7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한국은 일본에 137억달러어치 소재·부품을 수출했다. 하지만 수입액(288억달러)은 그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이런 현상은 지난해만의 일이 아니다. 소재·부품 분야 대일(對日) 무역적자는 2014년 163억달러, 2015년 141억달러, 2016년 146억달러 등 최근 5년간 763억달러(약 90조원)에 이른다.

올 들어서도 6월까지 67억달러 적자다. 구체적으로 부품에서는 전자부품(21억2000만달러), 일반기계부품(5억2000만달러) 등의 적자가 컸다. 소재 분야에서는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18억5000만달러), 고무 및 플라스틱(7억달러) 등이 적자다. 최근 일본이 한국으로의 수출을 제한하기로 한 포토레지스트(감광액),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을 생산하는 데 꼭 필요한 소재다. 일본산 소재·부품을 조달하지 못하면 한국의 주력산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소재·부품 외에 제조 장비 역시 일본 의존도가 크다. 지난해 한국은 반도체 제조용 장비에서만 일본에 57억6000만달러 무역수지 적자를 봤다. 이런 점 때문에 일본이 반도체 제조용 장비까지 추가로 수출을 제한하면 국내 산업의 타격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본에 소재·부품을 의존하는 산업 구조는 고질적인 대일 무역적자의 주된 원인이기도 하다. 한국은 1965년 일본과 수교를 맺은 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54년간 대일 무역적자 누적액은 무려 6046억달러(약 708조원)에 이른다.

정부가 소재·부품 국산화에 손을 놓았던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는 ‘소재·부품이 강해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2001년부터 관련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정책을 폈다. 그해 부품소재 전문기업 육성 특별조치법을 신설했다. 그 결과 2001년 27억달러에 그쳤던 소재·부품 무역수지 흑자는 지난해 1391억달러까지 늘었다. 하지만 유독 대일 소재·부품 ‘종속 구조’는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일본은 기초과학 경쟁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소재 분야가 특히 강한데 한국은 상대적으로 기초과학과 소재 분야 투자는 소홀했던 탓”이라고 지적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의 성공에 취한 나머지 소재·부품 산업 육성 노력이 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2010년대 들어 산업은 민간이 알아서 하면 된다는 인식이 퍼져 소재·부품을 포함한 산업 정책이 약해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