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일 경기 백석동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서 재활 치료사가 환자를 ‘수(水)치료’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2주년 성과 보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산병원을 방문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이 2일 경기 백석동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서 재활 치료사가 환자를 ‘수(水)치료’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2주년 성과 보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산병원을 방문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은 2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으로 2년간 3600만 명이 의료비를 2조2000억원 절감했다”고 말했다. 건보 보장성 강화 대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 시행 2주년을 맞아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 열린 대국민 성과보고대회에서다.

문 대통령은 중증 환자가 많은 상급종합병원은 건보 보장률이 2017년 65.6%에서 작년 68.8%로 늘었다는 통계를 제시하며 “정부는 임기 내 건보 보장률을 7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건보 혜택을 더 확대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내년에만 척추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흉부·심장 초음파 검사는 물론 1인 입원실까지 건보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아무도 부담 않겠다는 '문재인 케어' 42兆
이런 발표대로면 장밋빛 미래만 가득할 것 같은 문재인 케어가 실상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케어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 마련 문제에 대해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단체와 예산당국 모두 ‘나 몰라라’ 하고 있어서다. 문재인 케어에는 2023년까지 42조원이 필요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날 “내년 건강보험 국고 지원 비율을 올해 수준(13.6%) 이상으로 높일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가입자단체 대표 여덟 명이 정부의 3.49% 보험료 인상안을 거부하며 “법이 정한 국고 지원율(20%)부터 지키라”고 주장했지만 기재부가 “어렵다”고 맞선 것이다.

만약 예산당국과 가입자단체 모두 ‘돈 부담을 더 지기 싫다’는 입장을 유지하면 매년 3조원 이상 재정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현재 20조5955억원에 이르는 건보 기금 적립금은 2023년에 바닥날 가능성이 높다.
아무도 부담 않겠다는 '문재인 케어' 42兆
보험료 인상 없인 4년 뒤 건강보험 재정 고갈…험난한 '문재인 케어'

지난달 28일 건강보험 30년 역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내년 건보 보험료율 인상을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합의가 불발된 것. 건정심에서 보험료율 결정이 무산된 건 처음이다. 정부는 보험료를 3.49% 인상하는 안을 제시했는데 노동계와 경영계, 환자단체 등 가입자 단체들이 반발했다. 이들은 “정부가 건보 국고지원 비율을 정상화하기 전까지 건보료를 못 올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강보험법과 건강증진법은 건보료 예상 수입액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정부가 예산으로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은 지금껏 지켜진 적이 없다. 올해도 건보 국고지원비율은 13.6%에 그친다.

건보 재원 마련에 대한 공이 예산 당국으로 넘어온 셈인데 기획재정부도 ‘강 대 강’으로 맞섰다. 2일 기재부 관계자는 “내년 국고지원율을 올해 수준보다 더 올릴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가입자 단체의 요구를 사실상 묵살한 것이다.

‘모든 의료서비스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문재인 케어’에는 2019~2023년 42조원의 재원이 필요한데 기재부도 가입자도 ‘돈을 더 못 내겠다’고 버티고 있는 셈이다. 이대로 가면 건보 재정이 급속히 악화돼 문재인 케어가 좌초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회적 합의도 안 한 건보료 인상 계획

문재인 케어가 시행 2년도 안 돼 삐걱거리는 이유는 건보 재정 계획이 헐거웠던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2017년 8월 문재인 케어를 발표하며 2022년까지 보험료율을 매년 3.2% 올리겠다고 밝혔다. 3.2%는 2007~2016년 연평균 인상률이어서 이 정도면 가입자도 감내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그런데 2011년 이후로 기간을 좁히면 건보료 인상률은 매년 감소하고 있었다. 2011년 5.9%, 2012년 2.8%, 2013년 1.6% 등이다. 2017년엔 보험료가 동결됐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료를 3% 넘게 올리는 건 부담스럽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이때 정부는 보험료 인상 계획은 ‘예시’에 불과하다는 말로 민심을 달랬다. 실제 건보료 인상률은 그보다 더 낮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2017년 이후 건정심 때마다 정부는 3.2% 이상의 건보료 인상률을 요구했다. 가입자 단체는 작년까지는 정부안을 대체로 수용했지만 올해도 정부가 3%대 보험료 인상을 고집하자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가입자 단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이주호 정책실장은 “국민은 보험료를 매년 3.2% 올린다는 정부 계획에 합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건보 혜택 확대 계획은 연도별로 상세하게 제시하면서 재정 확충 계획은 사회적 합의도 없이 어물쩍 넘어간 탓에 사달이 났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케어 속도조절해야” 지적도

설상가상으로 예산 당국도 국고지원비율 상향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안 그래도 복지 예산이 급증하고 있어 건보 국고 지원까지 크게 늘릴 여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올해 복지 예산은 지난해보다 14.7% 불어난 72조5148억원으로 증가율은 역대 최고였다. 내년 건보 국고지원율을 16% 정도만 올려도 건보 분야에서만 올해(7조9000억원)보다 예산 부담이 2조2000억원이나 올라간다. 어찌 됐든 법이 정한 국고지원비율(20%)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기재부는 의무 사항은 아니라고 방어했다.

문제는 정부와 가입자 단체 모두 재원 마련 문제를 계속 외면하면 건보 재정에 구멍이 뚫릴 것이란 점이다. 정부는 보험료율이 매년 3.2% 오른다는 전제 아래 2023년 건보 기금 적립금이 11조807억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향후 건보료 인상이 차질을 빚으면 당초 계획보다 매년 3조원 이상 적립금이 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2023년 건보 기금이 바닥날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예산 당국과 가입자 단체가 서로 조금씩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양보하는 한편 문재인 케어의 속도조절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애초에 모든 비급여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한다는 계획은 무리였다”며 “국민에게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 위주로 건보를 확대해 재정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민준/박재원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