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을 두고 의견차를 보이던 한국전력과 정부가 내년 하반기 전기요금 인상 계획을 놓고 또다시 엇박자를 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일 보도해명자료를 내고 “한전 사외이사(비상임이사)가 별도로 제안해 의결한 전기요금체계 개편 방안은 정부와 협의된 바 없다”고 했다.

한전이 1일 이사회 의결 내용을 공시하면서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폐지 또는 축소, 원가 이하의 전력요금체계 현실화 등을 내년 상반기까지 추진하겠다. 이와 관련해 정부에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힌 지 하루 만이다. 한전의 공시내용과 관련해 ‘내년 하반기 전기요금 인상 계획’이란 언론 보도가 나오자 산업부에서 “정부와 협의된 바 없다”며 선 긋기에 나선 것이다.

산업부의 이런 설명에 대해 한전의 한 이사는 “공기업이 정부와 사전교감 없이 전기요금 개편을 추진하겠느냐”며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다”고 반박했다.

필수사용량 보장공제는 전기 사용량이 월 200㎾h 이하인 저소비층에 월 4000원씩 요금을 깎아주는 제도다. 한전 이사회는 이를 폐지 또는 축소해 누진제 개편으로 인한 손실을 메꾸겠다는 구상이다. 한전은 민관 태스크포스(TF)의 권고에 따라 올해부터 매년 7~8월 1541만~1629만 가구의 전기요금을 월평균 9486~1만142원씩 깎아주면서 매년 2536억~2847억원의 비용을 떠안게 됐다.

한 차례 누진제 개편안 의결을 보류했던 한전 비상임이사들이 지난달 28일 누진제 개편안을 받아들인 건 ‘전기요금체계 개편을 두고 정부와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뤘다’는 한전 집행부의 설명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전의 한 이사는 “분명히 한전 집행부와 정부 간 사전 조율이 있었다”며 “아무리 이사회라도 공기업인데 정부와 아무런 합의 없이 전기요금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공시하겠느냐”고 반박했다. 그는 “김종갑 한전 사장이 직접 ‘공시 내용 전반을 추진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설명했는데 정부가 뒤늦게 면피하려는 것”이라며 “선거를 앞두고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민감한 화두를 던지니 정치권에서 압력을 넣은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했다.

산업부는 보도해명자료에서 “전기요금체계 개편 방안은 한전이 내년 상반기 마련할 예정으로 현재 구체적인 내용은 결정된 게 없다”며 “한전이 방안을 마련해 인가를 신청하면 관련 법령과 절차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