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의 한국경제史 3000년
(59) 정신문화의 타락
다시 살아난 물질주의 악습…거짓·불신이 정신문화 갉아먹어

거짓말하는 사회

직전 연재에서 한국의 시장경제체제는 대중주의(大衆主義)로 타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저변에는 정신문화의 타락이라는 보다 큰 흐름이 작용하고 있다. 한국인이 거짓말을 잘함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일이다. 2014년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이 1400명이다. 일본에 비해 172배다. 허위 사실에 기초한 고소, 곧 무고죄는 일본의 500배다. 인구수를 고려한 1인당 위증죄와 무고죄는 일본의 430배와 1250배다. 같은 해 각종 보험사기의 암수(暗數)는 4조5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됐다. 어느 경제신문은 이를 두고 미국의 100배라고 했다.

민간에 대한 각종 정부지원금도 거짓말로 줄줄 새고 있다. 작년의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일인데, 지식재산권에 대한 정부지원금의 33%가 사기에 의한 지급이었다. 거짓말과 사기가 난무하니 ‘사회적 신뢰(social trust)’는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1985년 ‘일반적으로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긍정적 대답은 38%였다. 그것이 2010년의 26%까지 줄곧 낮아져 왔다. 다인종 사회인 미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실린 ‘강제노역에 동원된 우리 민족’의 사진. 실제로는 1926년 홋카이도 토목건설 현장에 감금된 일본인 노무자들의 모습이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실린 ‘강제노역에 동원된 우리 민족’의 사진. 실제로는 1926년 홋카이도 토목건설 현장에 감금된 일본인 노무자들의 모습이다.

거짓말하는 정치

거짓말이 정치의 유력 수단으로 등장하는 것은 2002년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그해의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업이란 사람이 민자당 대통령 후보의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체중을 일부러 줄였다고 폭로했다. 나중에 재판 결과로 밝혀졌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렇지만 그 거짓말에 대통령선거의 판세가 바뀌었다.

2008년엔 광우병 소동이 일었다. 미국에서 수입한 소고기가 광우병에 걸렸는데, 그것을 먹으면 뇌에 구멍이 뚫려 죽는다는 거짓말이었다. MBC의 어느 PD가 그런 방송물을 제작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정부를 곤경에 빠뜨릴 의도에서였다. 거짓말은 순식간에 전국을 덮었다. 중학생들이 “저 아직 15년밖에 못 살았어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촛불시위를 벌였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미국산 소고기를 먹고 죽었다는 사람은 전 세계 어디서도 단 한 명이 없다.

여의도 정가에 거짓말이 난무하고 있음은 누구보다 국회의원들이 잘 알고 있다. 어느 국회의원은 필자에게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거짓말하고 있어요”라고 수긍했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의 촛불집회.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의 촛불집회.

재판과 외교도 거짓말로

거짓말 행태는 이 나라 대학과 재판, 외교에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제41회 연재에서 지적한 대로 1939∼1944년 일본의 공장과 광산에서 노동한 조선인이 노예로 사역됐다는 집단기억은 1965년 이후에 형성된 환상이다. 대학의 역사학이 그 같은 허위의 집단기억을 널리 유포하는 데 앞장섰다. 2018년 10월 대법원은 (구)일본제철에서 근로한 4명의 원고에게 (신)일본제철이 1억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판결문을 읽은 필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판결문이 인용하는 원고들의 피해 내용은 관련 전문가인 필자에겐 앞뒤가 맞지 않은 거짓말이었다. 놀랍게도 이 나라 사법부는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원고들의 주장이 사실인지를 검증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은 지난 50년간 양국의 우호 관계를 뒷받침해온 1965년의 협정을 사실상 파기했다. 단돈 4억원의 위자료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거짓말 행태가 전방위로 만연하는 과정에서 이웃 나라 일본이 슬슬 ‘악의 화신’으로 바뀌어 왔기 때문이다. 대법관들은 양국의 외교가 파탄을 맞을지언정 역사의 ‘진실’과 ‘정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판결에 임했을 터이다.

매춘 대국

이 나라 정신문화의 타락을 알리는 또 하나의 징표는 매춘의 만연이다. 1966년 각종 매춘업에 종사해 성병 검진을 받은 여인의 수는 39만여 명에 달했다. 매춘을 전업으로 하는 여인이 25만여 명, 겸업으로 하는 여인이 14만여 명이었다. 20대 여성 총수의 무려 12%에 달하는 큰 비중이었다. 2002년 형사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국 68개소 집창촌에서 9092명의 여인이 전업으로 매춘에 종사했다. 이외에 다방 등에서 매춘을 겸업으로 하는 여인의 총수는 24만 명에 달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동 연구원이 추정한 매춘업 종사자의 총수는 최소 33만 명으로 20∼30대 여성 취업인구의 8%에 달했다.

이후 지금까지의 변화가 어떠했는지는 확실히 알기 힘들다. 2004년 성매매에 대한 처벌법이 제정된 이래 집창촌과 그에 거주하는 여인의 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매춘업이 쇠퇴했다고 단정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2015년 미국의 어느 기관은 한국 매춘시장 규모가 중국, 스페인, 일본, 독일, 미국에 이어 세계 6위라고 발표했다. 다시 말해 인구수를 고려한 매춘시장의 실질 규모에서 한국은 세계 톱이다. 인구 대비 매춘업에 종사하는 여인의 수에서도 그러함은 물론이다.
서울 강남의 한 점집. 역술(易術)과 무속(巫俗)은 여전히 한국인의 물질주의 문화와 더불어 번창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점집. 역술(易術)과 무속(巫俗)은 여전히 한국인의 물질주의 문화와 더불어 번창하고 있다.

물질주의 문화

한국 정신문화의 비교적 특질은 1985년 이래 미국 미시간대가 5년마다 실시해 온 ‘세계 가치관 조사’에 잘 드러나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어떤 덕목을 교육하는지는 세대 간에 전승되는 정신문화의 구조를 다른 무엇보다 훌륭하게 대변한다. 한국의 부모는 자식에게 “열심히 일해라” “절약하고 저축해라” “목표를 향해 참고 견뎌라” 등의 덕목에서 세계 평균 이상의 월등한 열성을 보인다. 반면 “남에게 관용을 베풀어라” “이타적으로 행동하라” “권위에 복종하라”의 덕목에서는 세계 최하위의 빈약한 성의를 보일 뿐이다. ‘세계 가치관 조사’의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서울대 경제학부의 김병연 교수는 “한국인의 물질주의 정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질주의 사회에서 행복의 기준은 부(富)의 크기와 사회적 지위의 고저(高低)다. 도대체 얼마의 부가 있어야 인간은 행복한가. 이 엉터리 질문으로 대다수 한국인의 일생은 행복하지 않다. “당신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한국인의 긍정적 반응은 국제적 비교에서 최하위다. 높은 열정의 물질주의 지향으로 한국인은 사회적으로 고독하다. 한국인이 인권·자선·환경단체나 정당에 가입한 비율은 국제적으로 낮은 수준이며, 외국인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에 대한 혐오감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삶과 죽음의 한국적 원리

거짓말이 기승을 부리고 매춘업이 식을 줄 모르는 것은 이 나라의 정신문화가 두드러지게 물질주의적이기 때문이다. 그와 관련해 학자들은 이 땅에 이식된 자본주의 또는 시장경제에 그 원인이 있다고 진단하지만, 그 역시 오랫동안 방치돼 온 거짓말이다. 자본주의의 고장인 영·미와 유럽 사회는 한국보다 훨씬 정신주의적이다. 거기선 종교개혁과 더불어 화폐로 축적된 어느 사람의 경제적 성공은 타인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보이지 않은 손’에 이끌려 타인의 행복을 증진한다는 믿음이 자생하고 성숙했다. 거기선 인간의 행복과 부의 크기는 무관하다는 믿음이 대중의 생활윤리로 정립돼 있다. 한국에서 그런 식의 정신문화가 한 시대를 돌파한 적은 없다.

한국의 정신문화는 19세기까지의 전통시대에 이미 더 없이 물질주의적이었다. 거기선 인간 행위의 선악을 심판하는 절대 신이나 사후(死後)세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혼백은 인간 세상을 떠나지 않고 독자의 인격으로 공중과 땅속에 머물렀다. 사람은 죽어서도 생시의 부와 지위를 유지했다. 신채호가 설파한 대로 “육계(肉界)의 상전은 영계(靈界)에서도 상전이요, 육계의 종놈은 영계에서도 종놈이었다.” 이 같은 삶과 죽음의 원리에서 부와 지위를 추구하는 이승에서의 행위는 그 수단이 설령 거짓말이라도 한 인간이 그의 영혼을 영원히 안식시킬 종교적 수행이었다. 한국의 정신문화에서 정직이란 덕목은 없는 편이었다.

1948∼1987년의 권위주의 시대는 자유민주의 국민국가를 세우고 공산세력으로부터 방어하고 공업화를 추진하기 위해 반공, 근면, 자조, 협동과 같은 구호로 국민을 동원했다. 국민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그에 협조하고 헌신했다. 국민의 정신문화는 억압적이긴 하지만 건전한 기풍을 구가했다. 그 시대가 지나고 대중이 주체가 된 이른바 ‘민주’와 ‘자율’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자 대중에 묻어 있던 오랜 전통의 물질주의 문화가 봇물을 이뤘다. 다음은 이 연재의 마지막 회다.

이영훈 < 前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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