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6일 서울 청계천로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에서 열린 제18차 경제활력대책회의를 마친 뒤 가상현실 장비를 이용해 한국의 관광명소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6일 서울 청계천로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에서 열린 제18차 경제활력대책회의를 마친 뒤 가상현실 장비를 이용해 한국의 관광명소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서울 여의도에서 지하철로 30분 거리에 에버랜드보다 큰 테마파크(경기 화성)가 생긴다. 명동과 이태원에서도 피부과 등 의료광고를 볼 수 있다. 게임 아이템을 액수 상관없이 사도 된다. 전동 킥보드를 타고 자전거도로를 달려 출근한다.

26일 정부가 발표한 ‘서비스산업 혁신 전략’으로 현실이 될 모습이다. 대책에는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제한했던 ‘셧다운제’를 완화하고 시민단체 반대가 심한 병원 인수합병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선언도 들어갔다. 그동안 반대 여론이 무서워서 손을 대지 못했던 분야다.

대기업 규제도 일부 풀기로 했다.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에 수출 대기업의 참여를 열어주고,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등의 글로벌 전자상거래 물류센터(GDC) 사업 발목을 잡았던 검역 규제를 해결해줄 계획이다. 대기업 지원에 인색했던 현 정부 기조를 고려하면 전향적인 정책이다. 경영계에서도 “예상보다 의미 있는 내용들이 담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결정적인 ‘한 방’은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서비스 신산업의 핵심인 스마트헬스케어, 공유경제, 빅데이터 등에 관한 규제는 언급조차 안 했기 때문이다.

5년간 70조원 금융 지원

대기업 공공SW 입찰 허용했지만…카풀·원격의료 핵심규제는 그대로
서비스산업은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세계 11위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숙박·음식·도소매 등 저부가가치 업종 비중이 과다하고 생산성은 제조업의 절반도 안 된다.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 2000년대 이후 부상한 글로벌 공룡기업은 대부분 서비스업인데 우리는 세계 시장에 내밀 변변한 서비스업종의 기업이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정부는 수년 전부터 서비스업 육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구호에만 그쳤다. 규제 개혁은 반대 여론이 나오면 금세 포기했고 연구개발(R&D) 등 투자도 미미했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대책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자는 의지가 엿보인다. 우선 정부 차원의 투자를 대폭 늘렸다. 보건의료 관광 콘텐츠 물류 등 유망서비스업에 5년간 70조원의 정책금융을 지원한다. 서비스업 R&D에도 5년간 6조원을 투입한다. 법인세를 50% 깎아주는 서비스업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세제 혜택 업종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서비스업 발전을 가로막았던 규제도 풀기로 했다. 이번에 개선하기로 한 게임 셧다운제와 게임 아이템 월 50만원 결제한도는 업계에서 숙원으로 꼽았던 규제들이다. 2013년 이후 대기업의 공공 SW 조달사업 입찰을 전면 금지했던 규제도 고칠 계획이다. 이 규제 시행 이후 삼성SDS, LG CNS 등의 매출과 전자정부 수출 실적이 급감했다. 신세계그룹이 추진하는 화성 복합테마파크에는 전철인 신안산선 역사를 이어주기로 했다.

현장에서 바로 체감 가능한 규제 개선도 눈에 띈다. 카드 결제 시 영수증을 소비자가 원할 때만 발급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고친다. 1년에 1000억원이 넘는 발행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전동 킥보드는 자전거도로 통행을 허용하고 안전 규정을 정비할 방침이다.

“핵심 신산업 규제 개혁 빠져 역부족”

정부가 과거보다는 진일보한 대책을 내놓은 배경엔 ‘이대로는 안된다’는 절박함이 있다. 지난해 3.2%였던 경제성장률이 올해 2%대 초반까지 떨어질지 모른다는 경고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최근의 경기 하강은 산업 경쟁력 자체가 떨어지는 구조적인 원인이 커서 외환위기 때보다 더 위험하다는 진단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획기적인 변화 없이는 2020년대부터 1%대 저성장이 고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번 대책도 구조적 위기를 타개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선진국들이 선점하고 있는 스마트헬스케어, 공유경제, 빅데이터 분야 등의 핵심 규제는 손도 못댔기 때문이다. 빅데이터의 경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은 물론 금융업까지 산업 전반을 진화시키는 열쇠인데 ‘개인정보 보호’라는 대의명분에만 집착하느라 낡은 규제를 고집하고 있다.

서비스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8년째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정부는 이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핵심인 보건 의료 분야는 제외하기로 했다.

서민준/오상헌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