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가 글로벌 수출 상품이 될 것 같다. 정부가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등에 국내산 양파를 수출하겠다고 발벗고 나섰다. 갑자기 농산물 선진국(?)이 된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농사가 너무 잘돼 양파를 보관할 창고가 부족한 지경이고 가격은 폭락 수준이다. 양파뿐 아니다. 마늘, 무, 감자도 비슷한 신세다.

따뜻한 겨울이 만든 '슬픈 풍년'…채소값 '뚝뚝'
가격이 떨어진 이유는 ‘작황’ 때문이다. 작황이란 농사가 잘되고 못된 정도를 가리키는 단어. 쉽게 말해 채소가 모두 풍년, 풍작이었다. 생각보다 농사가 잘되니 농부들이 밭에서 거둬들이는 양이 늘고, 그만큼 시장에 풀리는 물량도 증가했다. 하지만 양파 마늘 무 수요는 갑자기 늘지 않는다. 가격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 그 정도가 심각한 상황까지 갔다는 게 올해 특징이다.

그럼 풍작은 어디서 왔을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올해 1, 2월 즉 겨울이 매우 따뜻한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제주부터 서울까지 전국 기온은 예년(지난 30년간) 평균보다 1.5도가량 높았다. 그 여파로 롱패딩업체들이 장사를 망쳤다고 할 정도였다.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작년 12월 서울에 단 하루 ‘반짝’ 한파가 찾아왔을 뿐이었다. 따뜻하면 식물이 잘 자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얘기라 자세한 설명은 생략.

겨울철 비도 충분히 왔다. 기온이 높고 물을 많이 마시니 식물이 쑥쑥 잘 자랐다. 지난겨울 날이 좋아서 농사가 잘된 게 지금 와서 문제가 되는 사정이 있다. 양파 마늘 무 감자 모두 1년 내내 나오는 채소다. 지난겨울 먼저 태어난 ‘형님 채소’들이 아직도 시장에 남아 있다. 팔리지 못해 창고에서 썩어가는 것도 있다. 봄, 여름에 뒤따라 태어난 ‘동생’들이 “나를 데려가 달라”고 외치더라도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억지로 시장에 내놨더니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가격만 떨어졌다.

여기에 하나 더. 지난해 이들 채소를 키우는 밭이 늘어난 것도 다른 이유다. 마늘 재배면적은 예년보다 15%가량 증가했다. 양파도 농촌에서 ‘인기’ 품목으로 떠오르자 원래 키우던 다른 채소 대신 양파를 심었다. 직전 해에 시장 가격이 높아 너도나도 밭에 양파 등을 키운 것이 올해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