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추가 제재에 서명한 트럼프 대통령
이란 추가 제재에 서명한 트럼프 대통령
지난 20일 이란이 오만해 인근을 비행하던 미국의 글로벌 호크 무인기를 격추하면서 하마터면 미·이란 전쟁이 발발할 뻔 했습니다.

미국은 목요일 하루 종일 보복공격을 준비했는데, 공격 30분 전인 이날 오후 7시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격 중단을 명령해 전쟁 가능성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존 볼튼 백악관 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매파는 공격을 주장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월가의 지인 등 사적 네트워크를 통해 의견을 듣고는 결정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가 지인과의 통화에서 "일부 매파가 우리를 전쟁에 몰아 넣고 싶어한다, 우리는 더 이상 전쟁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뉴욕 증시가 바닥일때 터졌던 2003년 이라크전쟁
뉴욕 증시가 바닥일때 터졌던 2003년 이라크전쟁
트럼프 대통령이 공격을 주저한 건 두 가지 배경으로 관측됩니다. 우선 내년 대선에서 타격이 우려됩니다. 2003년 3월 시작한 이라크와의 전쟁은 수습과 미군 철수까지 만 7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이란은 이라크보다도 영토는 4배, 인구는 2배나 많은 중동의 맹주입니다. 이란에 대한 공격은 사우디, 이스라엘 등 미국이 우방이 모두 개입된 대형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큽니다.
미군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습니다. 취임 때부터 고립주의를 추진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전에 뛰어든다면 큰 모험이 될 게 분명합니다.

또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른바 워싱턴의 군산복합체 '딥스테이트'(Deep State)와 관계가 없다는 점입니다. CIA, FBI, NSA 등 정보기관 관료와 군수업체, 일부 의회 세력 등으로 구성된 딥스테이트는 주기적으로 전쟁을 통해 워싱턴을 지배해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과 거리가 먼 아웃사이더로 딥스테이트와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견제하던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을 해임하자, 딥스테이트가 반격한 게 로버트 뮬러 특검입니다. 뮬러는 FBI 출신이죠.

작년 이란핵협정 탈퇴 이후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높아졌지만, 국제 유가가 안정적 하락세를 보였던 건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월가는 지금도 전쟁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월가 일부에선 다른 이유로 지금으로선 전쟁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얘기합니다. 뉴욕 증시 덕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일 수시로 뉴욕 증시를 확인하는 등 주가를 자신의 업적의 척도로 여기고 있습니다. 현재 뉴욕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요.

이렇게 증시가 좋은데 이란과의 전쟁이란 변수를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전쟁은 그 양상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천차만별입니다. 군수업체 수혜가 예상되지만 정부 지출이 군수산업에 집중되면서 다른 부분에선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수 있지요. 유가도 급등해 미국 소비자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만약 뉴욕 증시가 꺾어진다면 어떻게될까요. 월가 일부에선 전쟁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예측합니다.

월가 한 관계자는 "2003년 이라크와의 전쟁은 당시 뉴욕 증시가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터졌다. 이후 뉴욕 증시는 반등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7년 말까지 계속 올랐다"고 말했습니다.

이라크전의 원인이 됐던 9·11사태는 2001년 9월 터졌습니다. 다우 지수는 9월초 9600대에서 9월20일에는 8000까지 떨어진 뒤 반등했습니다. 2002년 3월에 10600까지 올랐지만 이게 고점이었습니다. 2003년 3월20일 다우지수는 8200까지 떨어졌습니다.

9·11 이후 참고있던 미국은 그날 이라크를 향해 토마호크 미사일을 퍼부었습니다. 뉴욕 증시는 반등을 시작해 3월말 10000대를 회복했고 2007년 말 14000까지 거침없이 올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미 경제가 악화되고 뉴욕 증시가 꺾어진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확률은 낮아질 겁니다. 이란과의 전쟁이든 뭐든 베팅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죠.
 뉴욕=김현석 특파원
뉴욕=김현석 특파원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