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A씨는 올해 1월 집을 장만했다. 주택담보대출 외에 자금이 더 필요해 캐피털 업체를 활용했다. A씨가 캐피털사에서 200만원가량을 빌리자 신용등급이 4등급에서 5등급으로 떨어졌다. 최근 생활자금으로 100만원 더 빌릴 때는 적용 금리가 연 1%포인트 이상 올라갔다. A씨는 “대출원리금 상환을 연체한 것도 아닌데 2금융권에서 소액을 빌렸다고 신용등급이 한 단계 하락한 것은 너무 심하다”고 토로했다.

앞으로 A씨처럼 캐피털·카드회사 등 2금융권에서 돈을 빌렸다는 이유로 신용등급이 대폭 하락하는 일이 줄어들 전망이다. 금융위원회가 25일부터 신용정보(CB)사의 개인신용평가 모형에서 금융업권의 반영 비율을 낮추기로 했기 때문이다.

카드론 받아도 신용등급 '묻지마 강등' 안된다
94만 명 신용점수 평균 33점 상승

국내 금융회사들은 나이스평가정보 또는 KCB와 같은 신용평가회사(CB)의 평가 결과를 반영해 개인·기업의 대출금리를 정한다. 신용점수를 1~1000점 사이에서 매기고 구간별로 등급을 정하는 방식이다. 점수가 낮을수록, 10등급에 가까울수록 신용이 불량한 사람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대출금리를 적용받는다.

CB사들은 그동안 2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사람의 신용점수는 무조건 50~60점 떨어뜨렸다. 은행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사람이라고 전제했기 때문이다. 신용점수가 50~60점 떨어지면 신용등급은 1등급가량 하락한다. 대출금리는 최소 1%포인트 이상 오를 가능성이 크다. 같은 금액이라도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신용점수 변동폭이 적어 신용등급에도 변화가 거의 없다.

금융위는 대출금리를 고려하지 않고 제2금융권을 이용했다는 이유만으로 하락폭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최근 카드사·캐피털업체, 보험사 등이 우량 고객 확보를 위해 대출금리를 낮추고 있는 분위기도 감안했다.

금융위는 이번 제도 개선으로 총 94만 명의 신용점수가 평균 33점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중 46만 명은 신용등급이 한 등급 이상 오를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 1월 개선안이 먼저 시행된 저축은행권에서는 이용자 68만 명의 신용점수가 평균 65점 올랐다. 이 중 40만 명의 신용등급이 한 등급 이상 오른 것으로 분석됐다.

업권별로는 상호금융에서 돈을 빌린 48만 명의 신용점수가 평균 36점 올라갈 것으로 추산됐다. 캐피털업체를 이용한 사람 가운데 32만 명이 평균 32점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보험사에선 총 23만 명의 점수가 평균 31점 올라간다. 카드사에서 대출한 14만 명의 평균 점수는 40점 상승한다.

신용등급제도 단계별 폐지

금융위는 ‘신용등급제’를 ‘신용점수제’로 점차 바꿔간다는 방침이다. 금융회사들은 최근까지 등급제로 대출금리를 책정했다. KCB 기준으로 신용점수가 620점인 사람은 신용등급이 6등급에 가깝지만 대출금리는 7등급으로 적용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개인에 대한 리스크 평가를 세부적으로 하지 못해 등급 간 절벽효과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신용점수는 큰 차이가 없는데도 등급이 낮아 대출금리가 대폭 올라가는 일이 적지 않았다.

금융위는 1월부터 국민·신한·우리·KEB하나·농협은행에 신용점수제를 시범적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내년부터는 전 금융권이 신용점수제를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바꿔드림론과 같은 정책금융 지원 기준도 신용점수제로 바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