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판 키우자
싱가포르, 글로벌 스타트업 허브로

세계는 '스타트업 허브' 경쟁
싱가포르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공유오피스인 저스트코에서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일하고 있다. /싱가포르=나수지 기자

싱가포르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공유오피스인 저스트코에서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일하고 있다. /싱가포르=나수지 기자

핀란드 헬싱키 교외에 있는 알토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캠퍼스. 이곳에는 유엔 기술혁신연구소, 일본 자동차부품업체 덴소의 모빌리티연구소 등 스타트업 지원공간이 즐비하다. 이 대학에서만 한 해 평균 100여 개의 스타트업이 창업한다. 레이 에윈 알토대 커뮤니티 총책임자는 “지난해 스타트업 투자금의 60% 이상을 해외에서 끌어왔다”고 말했다.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국경과 시장, 투자의 장벽이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스타트업 선진국들은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이어 4차 산업 선도기술을 교류할 ‘스타트업 얼라이언스(동맹)’ 경쟁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한국은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글로벌 경쟁에서 크게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스타트업 분석기관인 스타트업게놈이 발표한 ‘2019년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도시 기준)에서 서울은 30위권 밖에 머물렀다. 베이징(3위), 싱가포르(14위), 홍콩(25위)을 뒤쫓는 상황이다. 국내 모태펀드의 해외 스타트업 투자 금지를 포함한 각종 규제가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막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서울은 '30위 밖'

이에 비해 프랑스는 지난 3월부터 외국인이 프랑스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하면 심사 없이 4년간 취업비자를 발급해준다. 동남아시아 벤처캐피털(VC)의 63%가 몰려 있는 싱가포르는 ‘스마트네이션’(스타트업 활성화 정책)을 국가 아젠다로 삼았다.

한국 정부도 올 11월 열릴 예정인 스타트업 콘퍼런스 ‘컴업’을 아시아 최대 스타트업 행사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캣 보롱간 라프렌치테크(프랑스 스타트업 정책기관) 총괄디렉터는 “글로벌 국가 간 ‘스타트업 허브’를 조성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며 “그 결과에 따라 4차 산업 시대의 승자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VC 거점 된 싱가포르…스타트업 행사, 한국의 10배

지난 10일 찾은 싱가포르 도심 외곽의 블록71.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핀테크(금융기술), 3차원(3D) 프린팅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사업모델을 구상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몰려 있었다.

블록71은 싱가포르국립대 주도로 조성된 스타트업 육성단지다. 스타트업 보육기관 운영이 시작된 빌딩의 이름을 땄다. 이곳에 250개 넘는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VC) 30여 곳이 입주해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아사드 수팟 싱가포르국립대 블록71 담당자는 “블록71에선 싱가포르에서 사업하고 싶어하는 스타트업이라면 국적과 나이에 상관없이 일할 수 있다”며 “해외 스타트업 중 동남아시아 시장을 노리는 초기 기업이 주로 블록71을 거쳐갔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선 비트윈과 시크럭스 등이 블록71에 거점을 두고 싱가포르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서울은 '30위 밖'

‘판’ 커지는 아시아 스타트업

싱가포르가 글로벌 스타트업의 ‘허브(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동남아 지역에서 스타트업과 투자자가 교류하는 거점도시로 각광받고 있어서다. 싱가포르는 한때 경쟁관계였던 홍콩을 제치고 스타트업 허브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분석기관인 스타트업게놈이 발표한 올해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에서 싱가포르는 14위를 차지해 홍콩(25위)과 서울(30위 밖)을 크게 앞질렀다.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얼마나 활발한지를 평가하는 ‘연결성’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결과다.

싱가포르 VC인 골든게이트벤처스의 비니 로리아 파트너는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실리콘밸리와 견줄 정도로 세계의 유능한 인재를 끌어모으고 있다”며 “다양한 배경의 사람이 모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마법 같은 혁신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가 글로벌 스타트업 거점으로 떠오른 건 스타트업 시장에서 아시아의 잠재력이 주목받고 있어서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5년 전인 2014년만 해도 글로벌 시장에서 아시아 스타트업이 투자받은 비중은 23.2%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7년엔 두 배가량인 43.1%로 늘었다. 최근 들어 스타트업 투자자들은 미국 등 북미를 벗어나 아시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조상현 무역협회 스타트업글로벌지원실장은 “동남아 지역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30대 이하인 ‘젊은 국가’”라며 “빠른 경제성장률과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스타트업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 허브’로 부상한 싱가포르

동남아 국가로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가 집중되면서 싱가포르가 재조명받고 있다. 싱가포르는 블록71 등 육성단지의 선도적인 조성과 각종 지원책으로 동남아의 스타트업 허브를 자처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와 스타트업이 교류할 수 있는 이벤트도 넘쳐난다.

2017년 싱가포르에서는 스타트업 행사가 96차례 열렸다. 아시아에서 개최된 스타트업 행사의 23%에 해당한다. 같은 기간 중국에서는 26차례, 홍콩에서는 20차례, 한국에서는 9차례 열렸을 뿐이다. 행사는 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스타트업, 대기업, VC를 집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의 척도다.

김건우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원은 “글로벌 스타트업 행사는 스타트업, 투자자, 기업가, 언론 등을 한자리에 모아 정보 소통과 협업이 이뤄지도록 하는 강력한 네트워크 활동”이라며 “각국 스타트업 간 경쟁이 첨예해지면서 주요 관계자들의 네트워킹이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싱가포르 정부도 글로벌 스타트업 관계자를 한자리에 모으는 데 적극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핀테크 행사인 ‘핀테크 페스티벌’은 정부가 주도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2014년 ‘스마트네이션’ 프로젝트를 선포하고 규제 완화, 지식재산권 보호, 공적자금의 초기 투자 할당 등 정책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그 결과 자산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 기업이 속속 출현하고 있다. 동남아의 우버로 불리는 그랩, 동남아 지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라자다가 대표적이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민간 차원의 노력도 활발하다. 아시아 최대 스타트업 행사로 꼽히는 ‘테크인아시아’는 싱가포르의 스타트업 전문지에서 주최한다. 마리아 리 테크인아시아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투자자와 스타트업이 5분 남짓 대화하는 스피드 데이팅 등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행사를 여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헬싱키·파리=서기열/싱가포르=나수지 기자 philos@hanky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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