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뚫린 재정
(5) '중구난방' 일자리 예산

부랴부랴 급조한 일자리정책
눈먼 돈 주워가는 '줍줍 일자리'
서울 마포구의 어르신일자리 사업 참여자들이 지난 12일 도화동 먹자골목을 청소하고 있다. 이 사업은 노인들에게 매주 월·수·금요일 오전 6시30분부터 8시까지 미화업무를 맡기는 공공근로의 하나다.  /김익환 기자

서울 마포구의 어르신일자리 사업 참여자들이 지난 12일 도화동 먹자골목을 청소하고 있다. 이 사업은 노인들에게 매주 월·수·금요일 오전 6시30분부터 8시까지 미화업무를 맡기는 공공근로의 하나다. /김익환 기자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초 이례적인 보도자료를 냈다. 제목은 ‘2019년 일자리사업 평가 결과 및 개선방안’으로, 현 정부 2년간 일자리 정책의 문제점을 담았다. 재정으로 인건비를 지급한 직접일자리 사업이 민간으로 이어진 비율은 16.8%에 불과했고, 시간선택제 일자리정책이 단기 알바만 양성했다는 고백이었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반성문’이라기엔 민망할 정도의 조치만 있었다. 개선방안의 일환으로 폐지하기로 한 일자리사업은 관광통역안내사 양성교육 등 네 개, 관련 사업비는 13억원에 그쳤다. 올해 일자리사업 예산 22조9000억원의 0.005% 수준이다. “반성하는 시늉만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일자리정책 ‘반성문’ 냈지만…

짝퉁신고원·등산지도사…일자리사업만 170개 "담당 공무원도 몰라"

정부가 일자리사업을 개선하겠다고 한 이유는 중앙정부 따로 지자체 따로, 정부 내에서도 부처별로 사업을 벌이다 보니 내용이 비슷하거나 중복된 경우가 많아 일제 정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올해 정부가 운영하는 일자리사업은 170개다. 2017년 185개, 지난해 183개에서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유사·중복사업이 많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전체 일자리사업 중 인건비 전액을 정부가 지원하는 직접일자리 사업은 40개(3조7000억원)에 달한다. 직접일자리 사업은 대부분 취약계층의 소득 보조 차원이지만 부처별로 할당되다시피해 주먹구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요양·돌봄서비스와 같이 이미 민간에서 근로자로 취업한 사람에게도 보조금이 지급되기도 한다. 아는 사람만 반복적으로 참여해 ‘눈먼 돈’을 빼먹는다는 뜻에서 ‘줍줍(줍고 또 줍는) 일자리’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짝퉁신고원·등산지도사…일자리사업만 170개 "담당 공무원도 몰라"

하지만 모든 직접일자리 사업이 비판받는 것은 아니다. 고용시장 재진입이 불가능한 노인에게는 최소한의 생계비 보조 등 사회안전망 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서울 도화동에서 만난 A씨(75)는 “2년 전부터 1주일에 두세 번 아침에 나와 밤새 어지럽혀진 먹자골목을 청소하는데 운동도 되고 용돈벌이도 된다”고 만족해했다. A씨는 도화동 행정복지센터의 어르신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 사업은 노인들에게 매주 월·수·금요일 오전 6시30분부터 8시까지 미화업무를 맡기는 공공근로일자리 사업이다. 보수는 최저임금(시급 8350원)에 맞춰 지급된다.

문제는 직접일자리 사업의 종류가 많고 중구난방으로 운영되다 보니 관리감독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고용센터 직원은 “사업 종류가 너무 많아 관련 서류를 찾아보지 않으면 상담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상담인력이 부족한 데다 민원인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 언성이 높아질 때도 많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황당 일자리

정부가 일자리사업의 이런 문제점을 알면서도 ‘교통정리’를 못하는 것은 정치적 고려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고용지표에 민감한 청와대와 여당의 압박을 받고 있는 부처들이 실적을 쌓기 위해 일자리사업 가짓수와 예산을 늘린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2013년 12조2000억원 수준이던 일자리예산은 6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고용률은 2013년 59.8%에서 지난해 60.7%로 0.9%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 부처의 일자리담당 국장급 간부는 “정책의 성과를 냉정히 평가해야 하지만 현재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며 “그렇다 보니 사업 수는 점점 많아지고 정책 내용보다 홍보가 더 중요한 상황이 돼버렸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10월 고용한파가 닥치자 정부가 부랴부랴 내놓은 이른바 ‘맞춤형 일자리’ 사업도 그런 예다. 68개 정부기관을 동원해 4만3000여 개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지표를 개선하겠다는 의도였지만 ‘빈 강의실 불 끄기’ ‘어촌 그물 수거’ ‘전통시장 화재 감시’ 등까지 일자리로 포장하면서 역풍을 맞기도 했다.

그럼에도 고용지표 ‘개선’을 위한 단기 일자리 사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특허청의 ‘지식재산권 보호활동 강화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약 10억5000만원의 예산이 책정된 이 사업은 경력 단절 여성 등이 재택근무하면서 온라인으로 유통되는 위조상품을 찾아 신고하는 일자리다. 산림청은 약 109억원을 들여 ‘산림서비스 도우미’라는 이름으로 약 800명의 등산지도사, 숲 체험활동 도우미 등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장려금, 직접일자리 사업 등으로 푼돈을 여기저기 나눠준다고 해서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라며 “직업훈련을 강화하고 산업구조 개편, 대·중소기업 양극화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승현/김익환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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