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집 못 키우는 카카오뱅크 > 카카오뱅크는 2017년 7월 ‘같지만 다른 은행, 새로운 은행이 온다’는 슬로건을 앞세워 출범했다. 이용 편의성을 강조하며 빠른 속도로 확산돼 지난달 말 고객 수 960만 명을 넘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각종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장기 성장 계획이 불투명하다는 게 금융권의 지적이다.  /한경DB
< 몸집 못 키우는 카카오뱅크 > 카카오뱅크는 2017년 7월 ‘같지만 다른 은행, 새로운 은행이 온다’는 슬로건을 앞세워 출범했다. 이용 편의성을 강조하며 빠른 속도로 확산돼 지난달 말 고객 수 960만 명을 넘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각종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장기 성장 계획이 불투명하다는 게 금융권의 지적이다. /한경DB
샤오미뱅크, 라인뱅크, 알리바바뱅크…. 세계적으로 인터넷전문은행 붐이 일고 있다. 각국이 인터넷전문은행 육성을 위해 노력한 결과다. 한국은 다르다. 2년 만에 겨우 추진된 세 번째 인터넷은행은 불발했고, 기존 업체도 자본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낡은 규제 때문에 성장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샤오미·라인뱅크 쏟아지는데…성장 멈춘 韓 인터넷은행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만은 이달 인터넷은행 인가 결과를 발표한다. 라인뱅크, 넥스트뱅크, 라쿠텐뱅크 등 세 개 컨소시엄이 인가신청서를 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만은 은산분리 규제를 엄격하게 적용해오다가 최근 비(非)금융자본이 인터넷전문은행 지분을 60%까지 확보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말했다.

홍콩 금융당국은 지난달 중국 최대 인터넷기업인 텐센트와 스마트폰업체 샤오미,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등 네 곳에 인터넷은행을 인가했다. 지난 3월 출범한 리비버추얼뱅크 등 네 곳을 합치면 올해 인가를 내준 인터넷은행만 여덟 개다. 태국도 지난 3월 첫 인터넷은행이 영업을 시작했다. 올 하반기에는 카시콘은행과 라인이 세운 합작법인 카시콘라인이 인터넷은행 서비스를 개시할 계획이다. 선두 주자인 미국과 영국은 이미 20여 곳의 인터넷은행이 있다.

국내 인터넷은행은 정체 상태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기존 사업자는 ‘대주주 적격성’이라는 문턱에 걸려 몸집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 신규 인터넷은행 인가는 무산됐고, 재도전 의사를 밝히는 곳도 찾기 어렵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대로 가다간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금융의 존재감이나 경쟁력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中 위뱅크, 5년 만에 대출 50조…韓 케뱅·카뱅은 자본확충도 못해

세계 각국이 앞다퉈 인터넷전문은행 육성에 나서고 있다. 성공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최대 인터넷기업 텐센트가 주요주주로 참여한 ‘위뱅크’가 대표적이다. 대출잔액은 작년 말 3000억위안(약 50조원)을 넘어섰다. 고객 수는 1억1400만 명까지 치솟았다. 인터넷은행 설립 열기가 대만 태국 홍콩 등으로 빠르게 확산하는 이유다. 한국은 분위기가 다르다. 인터넷전문은행이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기존 업체의 자본확충 길은 막혔고, 신규 도전자도 사라졌다. 금융권 안팎에선 ‘이대로 괜찮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샤오미·라인뱅크 쏟아지는데…성장 멈춘 韓 인터넷은행
미국·영국보다 20년 늦은 출발

인터넷은행은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 유럽 등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1995년 출범한 미국 SFNB(시큐리티 퍼스트 네트워크뱅크)가 세계 최초다. 유럽은 1998년 에그뱅크를 시작으로 20여 개 인터넷은행이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은 2000년 다른 업종의 은행업 진입이 허용되면서 인터넷은행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그해 출범한 재팬넷뱅크를 비롯해 총 8개의 인터넷전문은행이 운영되고 있다. 일본 최대 온라인쇼핑업체 라쿠텐이 운영하는 라쿠텐뱅크, 일본 전통은행 미쓰비시도쿄UFJ와 이동통신업체 KDDI가 50%씩 출자해 설립한 지분뱅크 등이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중국은 2015년부터 위뱅크, 마이뱅크를 시작으로 10여 개 인터넷은행을 인가했다.

한국은 뒤늦게 ‘참전’했다. 국내 첫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는 2017년 4월 출범했다. 카카오뱅크도 그해 7월에야 업무를 개시했다.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20년가량 늦었다. 국내에서도 움직임이 없던 것은 아니다. 2001년 SK텔레콤, 롯데, 안철수연구소 등이 공동으로 인터넷은행 설립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은산분리 규제와 반(反)기업 정서 등이 발목을 잡았다.

인터넷은행의 위력 ‘차별화’

세계 각국은 비(非)금융회사들이 인터넷은행 사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규제를 철폐하고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미국은 25%, 일본은 20%까지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를 허용하지만 당국 승인에 따라 그 이상도 가능하다.

너도나도 인터넷은행 육성에 뛰어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인터넷, 모바일 등을 활용하면 은행 점포 비용을 절감해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시간·공간 제약이 없는 금융서비스도 제공하게 된다. 나아가 온라인을 통하면 오프라인 점포에 얽매이지 않고 사업 영토를 세계로 넓힐 수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인터넷은행은 차별화와 편의성을 무기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폴란드에선 BRE은행이라는 전통은행이 ‘엠뱅크’라는 인터넷은행에 흡수되기도 했다. 엠뱅크는 실시간으로 고객 정보를 분석해 고객이 대출을 신청하면 30초 안에 대출금을 입금해준다. 기존 은행과 다른 차별성으로 고객을 끌어모았다.

미래 불투명한 한국 인터넷은행

국내 인터넷은행 생태계는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두 곳에 의존하고 있다. 이마저도 대주주 적격성 심사 중단 등으로 자본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제3 인터넷은행 두세 곳의 예비인가를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올 3분기 예비인가를 다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이 역시 전망이 불투명하다.

인가 신청을 고려하는 곳 자체가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과거 인터넷은행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한 기업 대표는 “당시 인가가 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국내 인터넷은행 환경은 척박하다”고 말했다.

인터넷은행 설립 및 운영에 금융당국이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한 행사장에서 “3분기에 (인터넷은행) 재인가를 추진하면 신한금융이 참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으로 금융권의 분위기는 ‘얼음’이 됐다는 후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실상 특정 금융사를 찍어 참여하라는 신호를 보낸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은 “한국은 정보기술(IT) 강국으로 꼽힐 정도로 인터넷과 모바일이 발전했는데도 인터넷은행이 발전하지 못한 건 지나친 규제 때문”이라며 “IT 시장이 발달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시도됐어야 할 변화가 규제에 막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