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거래가격 롯데 첫 추월
신세계 상품권 가격이 롯데 상품권 가격을 넘어섰다. 1994년 백화점 상품권이 국내에서 처음 발행된 이후 롯데 상품권이 신세계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인들이 면세점에서 쓰기 위해 신세계 상품권을 대량 구입해 가격이 뛴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9일 서울 명동의 상품권 환전소 등을 조사한 결과 신세계 상품권 10만원권은 9만7200~9만7300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액면가 대비 할인율로 환산하면 2.7~2.8% 수준. 상품권 할인율이 낮을수록 가격은 높다. 이에 비해 롯데 상품권 10만권은 할인율 3.2~3.4% 정도였다. 9만6600~9만6800원에 살 수 있다. 서울 명동의 한 상품권 거래상은 “신세계 상품권이 롯데보다 한 달 이상 더 비싸게 팔리는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신세계가 시내면세점사업을 확장하면서 중국인들이 신세계 상품권을 대량 구매한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지난해 상품권 발행 규모도 신세계가 2조8000억원으로 롯데(2조4000억원)를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 상품권 할인율이 지난달 2%대까지 떨어졌다. 3%대인 롯데 상품권보다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9일 서울 명동의 한 사설 환전소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상품권을 구매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신세계 상품권 할인율이 지난달 2%대까지 떨어졌다. 3%대인 롯데 상품권보다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9일 서울 명동의 한 사설 환전소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상품권을 구매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국내 21만 곳서 사용"…신세계상품권, 25년 만에 롯데 제쳐

지난 7일 서울 명동의 한 환전소. 한 무리의 중국인들이 환전소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신세계 상품권을 뭉텅이로 구입했다. 10만원짜리 신세계 상품권 한 장 가격은 9만7200원. 환전상은 액면가의 2.8%를 할인해줬다. 이어 또 다른 중국인들이 왔다. 그들은 롯데 상품권을 찾았다. 10만원권 값은 9만6800원. 신세계 상품권보다 400원 쌌다. 환전상은 “원래 롯데 상품권이 비싼데 지난달부터 신세계에 역전됐다”고 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상품권 거래가 많은 명동과 남대문 일대 환전소, 구둣방을 여섯 곳 더 가 봤다. 가격은 비슷했다. 10만원권 신세계 상품권은 롯데보다 200~500원 더 줘야 살 수 있었다. 롯데가 25년간 지켜온 국내 상품권 시장 1위 자리를 신세계에 내줬다.
"신세계상품권 없어서 못 팔아"…따이궁이 뒤집은 상품권 시장

발행 규모도 롯데에 앞서

롯데와 신세계는 1994년 백화점 상품권 발행을 시작했다.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됐던 상품권 발행이 그해 허용됐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상품권 시장 1위는 줄곧 롯데 차지였다. 상품권 발행을 더 많이 했고 시장 거래 가격도 앞섰다. 롯데 상품권의 활용도가 더 좋았기 때문이다. 25년 지속되던 상황이 최근에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달 중순부터 신세계 상품권 값이 뛰었다.

한 유통회사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롯데 상품권의 할인율은 3.2~3.4% 사이에서 움직였다. 10만원짜리 상품권이 9만6600~9만6800원에 팔렸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신세계 상품권 가격은 지난달 중순 이후 꾸준히 9만7000원을 웃돌았다. 할인율은 기존 3%대 초반에서 2.7~2.8% 수준까지 떨어졌다. 30년째 백화점 상품권을 거래하고 있다는 환전상 이모씨는 “하루 이틀 신세계 시세가 높았던 적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한 달 이상 이런 상태가 이어진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상품권 발행 규모도 신세계가 앞섰다. 지난해 신세계는 약 2조8000억원어치 상품권을 발행했다. 롯데는 2조4000억원어치를 발행한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3위 현대백화점 상품권 발행액은 약 5000억원이다.

신세계 면세점 효과

25년 만에 롯데와 신세계 상품권 시세가 역전된 것을 두고 유통업계에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그중 최근에 벌어진 이벤트로 신세계면세점 개장이 꼽힌다. 2016년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을 연 것이 상품권 시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국내 상품권 환전소의 ‘큰손’은 중국 보따리상(따이궁)이다. 이들은 한 번에 수백 장씩 구입하는 일이 다반사다. 상품권을 구입해 면세점에서 쓰면 2~3% 할인받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매달 수십억원씩 쓰는 기업형 따이궁은 2~3%만 해도 수천만원을 아낄 수 있다. “상품권 시세가 중국인 손에 달렸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이전까지 따이궁은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을 많이 갔다. 브랜드가 다양하고 상품이 많은 데다 입지도 좋기 때문이다.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이 생긴 뒤에는 이 수요가 분산됐다. 그동안 롯데 상품권만 찾던 따이궁이 신세계 상품권을 찾기 시작했다. 2017년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이후 신세계면세점의 인기는 더 높아졌다. 중국 정부가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가 하는 사업장에는 가지 말라”고 지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지침은 상품권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는 신세계 상품권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갈 지경”이라고 한 환전소 관계자는 전했다. 올해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의 예상 매출은 1조7000억원에 이른다.

이마트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

한번에 역전된 것은 아니다. 신세계 상품권이 쓸 데가 많다는 인식도 시세에 영향을 미쳤다. 이마트에서 쓸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신세계가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어 용처는 더욱 늘었다. 2016년 문을 연 초대형 복합 쇼핑몰 ‘스타필드’가 대표적이다. 신세계 상품권을 스타필드 하남, 고양, 코엑스몰 등에서 쓸 수 있다.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도 꾸준히 늘고 있다. 현재 매장 수는 16개. 2030년까지 매장 수를 50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여기에 사업 시작 2년여 만에 매장 수가 200개를 넘은 ‘노브랜드 전문점’, 가전 전문 판매점 ‘일렉트로마트’, 화장품 편집숍 ‘시코르’, 고급 슈퍼마켓 ‘PK마켓’ 등에서 상품권을 쓸 수 있다.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상품권 값이 그만큼 올라갔다는 분석이다.

이런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신세계가 공격적으로 유통 사업을 확장하며 상품권 사용처를 늘려 가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는 국내보다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해외 사업 확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안재광/박종필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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