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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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건설회사 근로자 A씨는 프로젝트 업무 수행을 위해 한시적으로 이라크에서 근무했다. 현지 법인은 없었고 건설 현장에서 한국에서 맡던 인사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근무 중 업무상 재해로 사망했다. A씨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 유족연금을 신청했다. 공단은 A씨의 이라크 근무가 ‘해외파견’에 해당된다며 기각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주재원이 증가하면서 A씨처럼 업무 수행 중 사고를 당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산재보험법을 집행하는 근로복지공단이 해외주재원을 ‘출장자’와 ‘파견자’로 나누고 ‘파견자’는 보험급여 지급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공단과 주재원 가족 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출장과 파견, 구분 쉽지 않아

산재보험 적용, 해외 '출장자'는 되고 '파견자'는 안 된다는데…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근로복지공단에 신고된 해외주재원은 1만5155명. 2017년 1만4598명, 2018년 1만4661명 등 해마다 증가추세다. 기업이 근로복지공단에 신고하는 게 의무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해외주재원이 3만 명을 넘을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문제는 해외주재원 중 출장자와 파견자의 명확한 구분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근로복지공단은 해외주재원 중 출장자와 파견자를 ‘업무 지휘 주체’에 따라 구분한다. 출장자는 국내 본사의 업무 명령·지휘를 받는 사람, 파견자는 현지 법인의 업무 명령·지휘를 받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기업 여건상 해외주재원 업무에 대한 지휘 주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해외주재원 대다수가 해외법인 일을 하면서 동시에 국내 본사의 직·간접적인 업무 지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한 대기업 중국 주재원이던 B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중국 거래처 관계자 90여 명을 이끌고 제주를 방문했다. ‘2019 전략회의’ 참석 목적이었다. 저녁 식사 후 숙소로 걸어가던 B씨는 60대 여성이 운전하던 화물차에 치여 두개골이 골절됐다. 아직 혼수상태로 병상에 누워 있다. B씨 가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급여 신청을 냈다. 국내 본사에서 급여 이체로 월급을 받았고 일부 업무 지시를 국내에서 받았기 때문에 출장자로 봐야 한다는 논리였다.

근로복지공단은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B씨가 ‘해외파견자’라는 이유를 들었다. 공단은 중국 법인이 B씨의 근태 관리를 했고 B씨가 체류비에 대한 소득신고를 중국에 했다는 점을 들어 해외파견자라고 판단했다.

“산재 판정에 공단 자의적 판단 개입”

명확하지 않은 분류 기준 탓에 산재보험 적용 여부를 심사·결정하는 근로복지공단이 ‘자의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현재 산재보험법엔 출장과 파견을 구분하는 정의 조항이 없다. 근로복지공단은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라 이를 구분하고 있지만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공단으로선 보험급여 지급액이 적을수록 ‘성과’가 커지기 때문이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실의 한동엽 비서관은 “근로복지공단이 해외 근무 중 발생한 업무상 재해에 대한 산재신청을 승인할 경우 막대한 보상책임이 발생한다”며 “대부분의 신청에 대해 ‘해외파견’으로 단정해 일단 산재 불승인 처분한 뒤 법원이 산재로 판단하면 소급해 산재로 인정해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하루빨리 산재보험법에 ‘해외파견’에 대한 정의조항을 넣어 분쟁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노무법인의 변호사는 “산재보험법상 출장과 파견을 나누는 기준이 없어 근로복지공단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산재 승인 여부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추 의원은 최근 해외파견자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내용의 산재보험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