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언한 미국의 ‘중국 때리기’ 강도가 높아지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나섰다. 미국을 압박할 주요 무기인 희토류 생산시설을 둘러본 데 이어 중국 공산군(홍군)의 대장정 출발 기념비에 헌화하는 사진도 공개했다. 시 주석이 미국에 대해 장기 항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중국 국민 사이에선 반미(反美) 감정이 커지고 있으며 미국산 제품 불매 운동이 생겨나고 있다.
시진핑, 희토류 둘러보고 '대장정 헌화'…무역전쟁 '결사항전' 드러내
장기전 불사 의지 내비친 시진핑

21일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전날 미·중 무역협상 총책임자인 류허 부총리를 대동하고 장시성을 시찰하면서 중국 공산군의 대장정 집결 및 출발지인 간저우시 위두현을 찾아 기념비에 헌화했다. 시 주석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은 무수한 혁명 선열의 피로 이뤄진 것”이라며 “현재 국가가 발전하고 인민 생활이 좋아졌지만 혁명 선열과 당의 초심, 그리고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장정은 1934년부터 1935년까지 이어진 1만5000㎞에 달하는 공산군의 행군을 말한다. 이를 통해 혁명 근거지를 중국 동남부에서 서북부로 옮겨 기반을 잡았고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은 확고한 지도자로 떠올랐다.

시 주석은 이날 미국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시 주석이 대장정 정신의 강조를 통해 미·중 무역전쟁도 일치단결해 극복해 나가자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분석했다.

중국 지도부도 군대에 군사력 강화를 주문하는 등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따르면 공산당은 ‘시진핑 강군 사상 학습 요강’ 책자를 제작해 최근 모든 군대에 배포했다. 이 책자는 시 주석의 강력한 지도 아래 중국 특색 강군의 길을 걷자는 게 핵심 내용이다. 2035년까지 미국 수준으로 국방과 군을 현대화하겠다는 목표가 담겼다.

확산하는 미국 제품 불매 분위기

미국 정부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제재에 나선 뒤 중국에선 미국 제품 불매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무역전쟁 초기인 작년엔 반미 정서를 철저히 통제했지만 이번엔 관영 매체까지 나서 불매운동을 조장하는 분위기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등에는 일부 중국 회사가 직원들에게 “미국 제품을 사지 말라”고 권고했다는 공지문이 떠돌고 있다. 이들 기업은 공지문에서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 정부가 반격하기로 한 만큼 우리도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며 미국 제품 불매운동을 촉구했다. 아이폰과 미국 자동차를 비롯해 KFC, 맥도날드 같은 미국 패스트푸드도 사먹지 말고 미국 여행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때 중국의 한국에 대한 보복도 인터넷의 정체불명 공문을 시작으로 확대됐다”며 “중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만큼 온라인을 통해 미국에 대한 보복을 조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의 후시진 총편집인도 20일 웨이보에 자신이 9년 동안 사용한 아이폰 대신 화웨이 휴대폰을 구매한 사실을 공개하며 ‘미국산 불매 운동’을 자극하기도 했다.

중국 TV 방송에선 미국 드라마와 미국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퇴출당하고 있다. 20일 오전 9시에 방영될 예정이었던 미국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즌 8의 최종회는 갑자기 방영이 무기한 연기됐다. 19일부터 저장위성TV 등을 통해 방송되기로 예정됐던 드라마 ‘아빠와 함께 유학을’도 갑작스레 방영이 취소됐다.

관영 CCTV는 지난 16일 ‘영웅아녀(英雄兒女)’를 시작으로 17일 ‘상감령(上甘)’, 18일엔 ‘기습’까지 6·25전쟁을 주제로 한 항미원조(抗美援朝) 영화 3부작을 잇따라 내보내며 반미 여론의 불을 지피고 있다. 중국은 6·25전쟁을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뜻으로 항미원조 전쟁이라고 부른다.

미·중 무역전쟁을 주제로 한 노래도 퍼지고 있다. 가사는 ‘가해자(미국)가 싸우기를 원한다면 정신을 잃을 때까지 때릴 것’이라는 등 반미 감정에 호소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위챗에서 조회 수가 10만 건을 웃돌았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