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표 가파른 추락 심상치 않다
외환위기·걸프戰 때 같은 상황인데
정부는 애써 현실 부정하려 해
이제라도 위기 극복 나서야"
[단독] 김광두의 경고 "경제 위기 경계할 때"

문재인 정부 초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지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서강대 석좌교수·사진)이 “경기 침체가 가파른 속도로 심화하고 있다”며 경제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한국의 거시경제는 탄탄하다”는 청와대 설명과 달리 경기지표가 외환위기 때와 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진단이다.

김 원장은 지난 19일 페이스북에 ‘경기 침체 심화, 경제위기 가능성 경계해야’라는 제목의 경제 분석 글을 올리고 “정부가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상황이 더 악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경기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의 최근 흐름과 지난 5년간의 흐름을 비교했다. 그 결과 순환변동치가 작년 초부터 가파르게 떨어지더니 지난해 5월엔 최근 5개년 표준편차(평균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나타내는 값)의 하한보다 두 배 낮은 값을 뚫고 내려간 것으로 나타났다. 김 원장은 “최근 경기가 지난 5년간의 경기보다 크게 안 좋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국가미래연구원에 따르면 순환변동치가 직전 5개년 표준편차의 두 배 하한을 밑돈 것은 걸프전이 터진 1993년과 외환위기 때인 1998년 두 번밖에 없었다.

김 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각종 경제지표가 상황이 심각하다는 점을 가리키고 있는데도 정부는 현실을 애써 부정하려 하고 있다”며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경제 주권을 넘기기 두 달도 안 남았던 시점에 경제부총리가 ‘경제 기초가 튼튼해서 염려 없다’고 했던 악몽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라도 현실을 인정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 전반의 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기 침체의 골이 갈수록 깊어진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20일 서울 명동 상점의 종업원들이 평소보다 한산한 거리에서 ‘반값 세일’ 간판을 들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경기 침체의 골이 갈수록 깊어진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20일 서울 명동 상점의 종업원들이 평소보다 한산한 거리에서 ‘반값 세일’ 간판을 들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작년 5월부터 경기침체…요즘 정부 말 들으면 IMF 악몽 떠올라"

“우리 경제는 탄탄하다”는 정부 설명과 달리 현재 경기가 위기에 준하는 상황임을 보여주는 각종 통계와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이후 최악의 경제성장률(올 1분기, -0.3%),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를 찍은 설비투자(올 1분기, -10.08%), 2000년 이후 최고치를 찍은 실업률(올 4월, 4.4%)에 이어 경기종합지수라고 불리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지난 5년간 지표를 크게 밑돈다는 진단까지 나왔다.
[단독] 김광두의 경고 "경제 위기 경계할 때"

“현재 경제 위기에 준하는 상황”

문재인 정부 초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맡아 대통령의 ‘경제 교사’ 역할을 했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서강대 석좌교수)은 지난 19일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의 최근 흐름이 외환위기 수준의 움직임을 보인다”는 분석을 내놨다. 페이스북에 올린 ‘경기 침체 심화, 경제 위기 가능성 경계해야’라는 제목의 글에서다.

김 원장은 순환변동치의 불규칙한 움직임을 제거하기 위해 최근 12개월의 이동평균값을 구한 뒤 이 값의 증감률을 구했다. 이렇게 보정한 지표를 직전 5개년 표준편차(자료의 값이 평균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나타내는 값)의 상·하한과 비교해봤다. 최근 순환변동치 흐름이 직전 5년과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보기 위해서다. 그 결과 작년 초부터 급격히 떨어지던 순환변동치가 지난해 5월엔 표준편차 2배 하한보다도 낮아지는 ‘기현상’(왼쪽 그래프)이 나타났다.

지난달 비슷한 분석을 수행한 이종규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1993년과 1998년 두 번밖에 없었다”고 했다. 1993년은 걸프 전쟁, 1998년은 외환위기로 경제가 크게 어려웠던 시기다. 김 원장은 “현재 경기가 경제위기에 준하는 상황일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통계청이 관련 통계를 올 1월 조정한 뒤 순환변동치의 감소폭이 완만해졌다(오른쪽 그래프)”고도 했다. 통계 조정 뒤 순환변동치 감소 속도가 이전보다 느려진 것 같은 착시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통계청은 “순환변동치를 구성하는 세부 항목들의 연간 조정과 가중치 조정이 이뤄진 결과”라며 “이런 조정은 통상적인 업무”라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부는 이제라도 현실을 인정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 전반의 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키워내지 못하는 교육 시스템, 직업 훈련 등을 개혁해 인적 자본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 경제 상황에 대해 경고를 보내는 전문가는 김 원장뿐이 아니다.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지난 8일 ‘문재인 정부 2년 분석 토론회’에서 “현 정부 출범 이후 경제 침체는 역대급”이라며 “설비투자가 1997년, 2012년 이후 처음 1년 연속 감소 중이고 수출이 크게 부진하다”고 지적했다.
      김광두 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김광두 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정부 다음달 17일 ‘경기 하강’ 공식 선언

경기가 명백한 하강 흐름에 있다는 공식 선언도 다음달 나올 예정이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3일 경기기준순환일(경기 정점)을 정하기 위한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기로 했다. 이 자리엔 한국은행 실무진과 학계 전문가 등이 참여해 각종 경기지표를 살펴보고 잠정적인 경기 정점을 정한다. 이어 다음달 17일 주요 부처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국가통계위 경제분과위원회에서 경기정점을 확정한다.

그동안 경기 부진이 길어지면서 ‘경기 순환주기상 하강국면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경기정점 공표 여부를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경기가 순환을 마쳤는데도 정점과 저점을 찍지 않으면 경기 흐름을 분석하기 어려워진다”고 비판해왔다. 결국 정부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 등 각종 경기지표를 감안한 결과 확장국면에서 수축국면으로 꺾였다고 보고 이를 공표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산업화 이후 11번째 경기순환기에 있다. 10번째 경기 순환기는 2009년 2월 시작해 회복, 상승국면을 거친 뒤 2011년 8월을 정점으로 돌아서 둔화·하강했고 2013년 3월 끝났다. 11순환기의 경기 정점은 2017년 5월과 9월 사이에 결정될 전망이다.

서민준/고경봉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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