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이던 나에게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권한을 주고 책임은 본인이 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내게 권한과 책임을 모두 부여했다. 하지만 현 정부는 부총리에게 권한과 책임 중 어느 것도 주지 않는다. 그러니 부총리가 뭘 할 수 있겠는가.”(이헌재 전 부총리)
"경제 컨트롤타워 위상에 맞게 힘 실어줘야"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처한 난국을 극복하려면 청와대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경제 컨트롤타워의 위상에 맞게 힘을 실어주는 게 급선무”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경제 관료들을 믿지 못한 채 ‘정책 실험’을 하다 보니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됐다는 인식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정책을 제대로 펼치려면 전문성과 안전성이 필요하다”며 “관료와 외부 전문가가 긴밀하게 협업할 수 있도록 믿고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 경제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청와대 내에 경제부처에 대한 불신 기류가 팽팽하다는 점을 꼽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부총리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 아무리 해보려 해도 어쩔 수 없는 구조”라며 “청와대 수석들이 행정관료들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등 급진적인 정책이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도 향후 파급 효과와 보완책에 대한 관련 부처의 검토 없이 실행됐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청와대와 여당은 공무원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말을 너무 잘 듣는 게 문제라고 봐야 한다”며 “급진적인 경제정책에 브레이크를 걸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곳이 기재부인데 이들이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기재부가 각 부처의 ‘부처 이기주의’에 맞서 규제를 혁파하는 역할에 앞장서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홍 부총리가 취임 직후부터 바이오산업 규제 완화를 강조했지만 보건복지부 등의 반발에 가로막혀 성과를 내지 못한 게 대표적 사례라는 설명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