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寶庫' 국내 최대 이랜드 패션연구소 가보니

박성수 회장 "트렌드 돌고 돈다"
“핑크 바탕에 버건디색 장미가 두 송이씩 크기별로 퍼져 있는 게 좋겠어요. 이 패턴에 연핑크색 잎 모양을 추가해주세요.”

여성복 브랜드 로엠의 디자이너가 이랜드 패션연구소 디자인 샘플 중에 골라낸 꽃무늬 패턴은 연구소 소속 패턴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재탄생했다. 로엠 디자이너가 올 봄·여름(SS) 패션 트렌드 중 하나인 꽃무늬 패턴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그룹 패션연구소를 찾아왔다. 이 과정을 거쳐 나온 ‘백설공주 장미나염 원피스’는 불티나게 팔렸다. 로엠의 ‘여리 플라워 롱원피스’, ‘여리 플라워 블라우스’ 등도 패션연구소가 보유한 패턴을 활용한 신상품이다. 이랜드그룹의 ‘패션 지식연구소’는 정확한 트렌드 전망과 디자인 개발, 빠른 제품 출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상상력과 아이디어의 창고’ 역할을 하고 있다.
석은정 이랜드 패션연구소장이 트렌드존에서 유틸리티 트렌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지혜  기자

석은정 이랜드 패션연구소장이 트렌드존에서 유틸리티 트렌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지혜 기자

1990년대부터 빈티지 의류 수집

서울 가산동과 답십리에 나뉘어 있는 이랜드 패션연구소의 시작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자인 박성수 회장은 오래전부터 빈티지 의류, 패션 서적 등을 수집했다. 평소 “트렌드는 빈티지에서 시작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 20~30년 주기로 유행이 돌고 돈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직원들이 해외에 나가면 오래된 옷, 액세서리 등을 수집해 오라고 지시했다. 아동복, 군복, 유니폼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전문서적도 사모았다. 호텔, 건축, 여행, 선박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이는 패션 연구소의 기초 자산이 됐다. 방대한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한데 모아 분류작업을 시작한 것이 2006년. 이랜드 패션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빈티지 의류만 27만 벌에 이른다. 이랜드가 제조한 의류는 7만 벌, 전문서적은 1만3000여 권에 달한다.

"트렌드는 빈티지서 시작"…의류 27만벌 빼곡

돌고 도는 패션 트렌드 한눈에

가산동에는 직원들이 언제든 최신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놨다. 매달 36권의 패션잡지를 분석해 컬러, 문양, 소재 등 10개 카테고리로 나눠 키워드를 2~3개로 정리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잡지 화보를 붙여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했다. 6개월간의 트렌드 키워드를 붙여놓는다.

이랜드 패션연구소에선 잡지뿐 아니라 일반인은 구할 수 없는 고가의 해외 정보지도 직원들이 볼 수 있다. 한 권에 300만~500만원가량 하는 정보지는 해외 패션연구기관에서 연간 2~4회씩 발행하는 트렌드 분석 책자다. 이랜드그룹 소속 직원은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다.

‘이달의 핫 트렌드’ 제안도

패션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석은정 상무는 “저작권을 확보한 패턴, 문양 등을 1만5000여 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이를 활용해 신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랜드 디자인 파워의 원천이 되는 곳이라는 설명이다.

디자이너들은 트렌드존도 많이 활용한다. 수십만 벌의 옷을 보관 중인 샘플실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또 매달 핵심 트렌드를 보여주는 요약 패널과 여기에 속하는 샘플 옷을 비치해 놓기도 한다. 지난달엔 유틸리티를 주제로 트렌드존을 꾸며놨다. 유틸리티란 워크웨어(작업복), 군복 등에서 착안한 스포티하고 실용적인 옷을 말한다. 밀리터리 재킷, 주머니가 많이 달린 낚시용 조끼, 치렁치렁한 스트랩, 군인용 워커 등을 실물로 전시해놨다. 디자이너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한 전시다.

이랜드그룹은 패션연구소를 국내 최대 규모의 패션아카데미로 키울 계획을 갖고 있다.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모아놓은 텍스트 자료만 3TB(테라바이트) 규모에 달한다”며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디자이너를 육성할 수 있는 아카데미로 키울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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