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성복 매출 1위 브랜드인 '타임'은 한국의 '샤넬'로 불린다. 옷 한 벌에 100만원을 훌쩍 뛰어넘지만 충성고객이 많아 10년 넘게 백화점 여성복 분야 1위를 지키고 있어서다. 타임은 중고제품마저도 값이 잘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타임 브랜드를 보유한 한섬은 지난해 패션업계 불황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세일은 없다", 노(No) 세일 전략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타임은 지난해 21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1993년 만들어진 타임은 2009년 처음으로 연매출 1000억원(1025억원)을 돌파한 뒤, 2016년에는 국내 여성복 브랜드 최초로 2000억원을 넘긴 '메가 브랜드'가 됐다. 단일 브랜드로 2000억원대 매출은 국내 여성복 브랜드 중 타임이 유일하다.

타임은 유통업계에서 할인 판매를 뜻하는 '세일'이 없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타임은 브랜드가 생긴 지난 25년 간 단 한 번도 세일을 하지 않았다. 온·오프라인 판매 가격이 동일한 것은 타임이 거의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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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되게 프리미엄 가치를 유지해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겠다는 게 타임의 가장 우선되는 판매 전략이다. 그만큼 브랜드 관리도 '명품' 수준으로 엄격하게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타임은 백화점 판매 수수료율이 '루이비통', '샤넬' 등 명품 브랜드 수준 정도로 낮은 편이다. 국내 브랜드 중 타임과 비슷한 판매 수수료를 내는 곳은 '갤럭시' 정도다. 백화점 측에선 낮은 수수료를 받고도 타임을 입점시키고 싶어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충성고객'이 있어서다.

타임 관계자는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국내 유통 매장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타임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며 "언제 사도 손해 볼 일이 없는 '믿고 사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타임은 중고 제품마저도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어 '샤테크(샤넬+재테크)'를 본떠 '한섬테크(한섬+재테크)'라는 말도 생겼다.

"타임=국내 여성복 기준"

빠르게 변하는 해외 패션 트렌드를 국내 소비자들의 체형에 맞게 잘 접목하는 것도 타임이 인기 있는 이유로 꼽힌다. 타임은 브랜드 창립 초기 직장인 여성들을 위한 클래식한 정장 스타일로 트렌드를 만들어 나갔다. 여성 소비자들 사이에선 '타임=정통 여성복'의 이미지로 각인됐다. 1990년대 후반 외국 SPA(제조유통일괄) 업체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캐주얼이 유행하자, 타임 스타일도 캐주얼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타임은 '클래식'에 뿌리를 두고 캐주얼을 입혔기 때문에 "너무 캐주얼한 것도, 너무 클래식한 것도 선호하지 않는" 여성들의 디테일한 요구를 공략했다는 평가다. 이 같은 유연한 스타일링이 현재의 타임 아이덴티티로 굳어졌다. 타임이 인기를 끌자 소위 '동대문 패션가(街)'에서는 그해 나온 타임 여성복 디자인을 본떠 유사한 제품을 쏟아내는 현상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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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은 한섬 내부에서도 독특한 조직으로 운영된다. 한 명의 디자이너에게 의존하지 않고 집단 디자인 시스템으로 일한다. 타임 브랜드에 소속된 디자이너만 50명 이상으로 한섬 내에서 최대 규모다. 한섬 브랜드 가운데 유일하게 독립사업부인 '타임사업부'로 편제돼 있으며, 타임사업부장에게 상품 개발 권한과 책임을 모두 위임한다.

타임 관계자는 "디자인, 색깔, 소재 전문가들을 각각 따로 두고 이들의 능력을 한 데 모으는 집단 협력 체제로 타임 브랜드를 운영한다"며 "디자이너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조직과 시스템이 지금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