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정부 간섭에 골병 드는 공기업들
하지만 올해는 달라졌지요. 정부가 특별한 이유 없이 공급비용 정산 작업을 미룬 겁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가스공사가 도매 공급비용과 총괄원가 등을 산정해 승인 요청을 해 왔는데, 검증 및 분석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며 “언제 승인을 내 줄지 얘기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시장은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아무리 공기업이라도 회계상 문제가 없는 비용 산정 시점까지 정부가 늦춘 건 이례적이기 때문이죠. 적어도 2015~2018년의 4년간은 가스공사의 ‘5월1일’ 정산 일정에 차질이 빚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증권사인 하나금융투자는 최근 보고서에서 “정부 규제에 대한 우려가 증폭됐고, 잘 유지돼온 이익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는 게 주가 하락의 원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공급비용 조정 발표가 지연된 이유는 연료비 인상 때문”이라고 덧붙였지요. 정부가 물가 안정 차원에서 가스공사 정산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겁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한때 잘 나갔던 한국전력마저 적자로 돌아섰고 주가도 바닥이지 않느냐”며 “외국인 등 기관투자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정부 규제와 미래 불확실성인데 이게 한꺼번에 돌출됐다”고 했습니다.
공기업에 대한 정부 간섭은 하루이틀 된 얘기가 아닙니다만, 새 정부 들어 더욱 심해진 건 분명한 듯 합니다. 한 해 수 천억~수 조원의 이익을 내던 공기업들이 탈(脫)원전 등 대통령 공약에 보조를 맞추려다 줄줄이 적자로 돌아선 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국공항공사 한국전력 강원랜드 등 국내 전체 시장형 공기업(16개)은 작년 총 1조1000억원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새 정부 출범 전인 2016년만 해도 이들 공기업 순이익은 11조원에 달했지요. 2년간 순이익이 12조원 넘게 급감한 겁니다.
2년 전 7조1500억원의 순이익을 냈던 한전은 작년 1조15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원자력보다 발전 단가가 3배가량 비싼 재생에너지 및 LNG 전력을 많이 구입했던 게 가장 큰 배경이죠. 그런데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성과연봉제 폐지, 취업난 해소를 위한 고용 확대, 전남 한전공대 설립 등 회사는 점차 고비용 구조로 바뀌고 있습니다. “탈원전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공언했던 정부 때문에, 한전은 최소한 현 정부에선 전기요금을 올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또 다른 대형 공기업인 한국지역난방공사 역시 비슷한 처지입니다. 작년에 1985년 창사 이후 최악의 성적표(당기순손실 2265억원)를 받아든 이 회사는 오는 7월부터 아파트 난방요금을 7%가량 올리겠다며 정부 심의를 요청했지만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년도 연료비 등락분과 소비자요금 간 차액을 1년에 한 차례 정산하는 ‘연료비 정산제’에 따라 회계상 오류만 없다면 정부가 승인을 거부할 수 없지만 현실은 다르지요.
공기업들은 국정 철학을 이행해야 할 숙명을 안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포퓰리즘 정책을 위해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거나, 주머니쌈짓돈처럼 수익을 빼가면 결국 국민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겁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free lunch)은 없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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