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스공사 주가는 최근 열흘간 20% 가까이 급락했습니다. 작년 LNG(액화천연가스) 판매량이 늘면서 영업이익 1조3000억원, 순이익 5300억원을 냈던 견실한 공기업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작년 말 국정감사장에 출석했던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 /사진=연합뉴스
작년 말 국정감사장에 출석했던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 /사진=연합뉴스
원인은 ‘정부 규제 리스크’가 부각됐던 데 있습니다. 가스공사는 매년 5월1일을 기해 향후 1년간의 ‘공급비용’을 조정해 왔습니다. 공급비용은 가스공사의 운영·설비투자 보수 등으로, 가스 판매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올해는 달라졌지요. 정부가 특별한 이유 없이 공급비용 정산 작업을 미룬 겁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가스공사가 도매 공급비용과 총괄원가 등을 산정해 승인 요청을 해 왔는데, 검증 및 분석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며 “언제 승인을 내 줄지 얘기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시장은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아무리 공기업이라도 회계상 문제가 없는 비용 산정 시점까지 정부가 늦춘 건 이례적이기 때문이죠. 적어도 2015~2018년의 4년간은 가스공사의 ‘5월1일’ 정산 일정에 차질이 빚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증권사인 하나금융투자는 최근 보고서에서 “정부 규제에 대한 우려가 증폭됐고, 잘 유지돼온 이익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는 게 주가 하락의 원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공급비용 조정 발표가 지연된 이유는 연료비 인상 때문”이라고 덧붙였지요. 정부가 물가 안정 차원에서 가스공사 정산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겁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한때 잘 나갔던 한국전력마저 적자로 돌아섰고 주가도 바닥이지 않느냐”며 “외국인 등 기관투자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정부 규제와 미래 불확실성인데 이게 한꺼번에 돌출됐다”고 했습니다.

공기업에 대한 정부 간섭은 하루이틀 된 얘기가 아닙니다만, 새 정부 들어 더욱 심해진 건 분명한 듯 합니다. 한 해 수 천억~수 조원의 이익을 내던 공기업들이 탈(脫)원전 등 대통령 공약에 보조를 맞추려다 줄줄이 적자로 돌아선 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국공항공사 한국전력 강원랜드 등 국내 전체 시장형 공기업(16개)은 작년 총 1조1000억원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새 정부 출범 전인 2016년만 해도 이들 공기업 순이익은 11조원에 달했지요. 2년간 순이익이 12조원 넘게 급감한 겁니다.

2년 전 7조1500억원의 순이익을 냈던 한전은 작년 1조15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원자력보다 발전 단가가 3배가량 비싼 재생에너지 및 LNG 전력을 많이 구입했던 게 가장 큰 배경이죠. 그런데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성과연봉제 폐지, 취업난 해소를 위한 고용 확대, 전남 한전공대 설립 등 회사는 점차 고비용 구조로 바뀌고 있습니다. “탈원전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공언했던 정부 때문에, 한전은 최소한 현 정부에선 전기요금을 올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또 다른 대형 공기업인 한국지역난방공사 역시 비슷한 처지입니다. 작년에 1985년 창사 이후 최악의 성적표(당기순손실 2265억원)를 받아든 이 회사는 오는 7월부터 아파트 난방요금을 7%가량 올리겠다며 정부 심의를 요청했지만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년도 연료비 등락분과 소비자요금 간 차액을 1년에 한 차례 정산하는 ‘연료비 정산제’에 따라 회계상 오류만 없다면 정부가 승인을 거부할 수 없지만 현실은 다르지요.

공기업들은 국정 철학을 이행해야 할 숙명을 안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포퓰리즘 정책을 위해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거나, 주머니쌈짓돈처럼 수익을 빼가면 결국 국민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겁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free lunch)은 없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