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게 이끌라" 했는데…한진 경영권 분쟁?
재계 14위(자산 기준)인 한진그룹이 차기 총수(동일인) 지정을 놓고 내홍에 휩싸였다. 조원태 회장(44·사진)이 지난달 8일 별세한 조양호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동일인 결정 문제가 일단락된 듯했다. 하지만 한진이 공정거래위원회에 동일인 변경 신청을 하지 않으면서 조원태·현아·현민 삼남매 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룹 지주회사 한진칼 2대 주주인 행동주의펀드 KCGI가 지분율을 끌어올리며 경영권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한진그룹 후계 구도가 안갯속에 빠져들고 있다.

차기 총수 정하지 못한 한진

공정위는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이 대상인 ‘2019년 대기업 집단 지정 현황’ 발표를 당초 10일에서 15일로 연기했다. 공정위는 8일 긴급 브리핑을 열어 “한진이 동일인 변경신청서를 이날까지 제출하지 않아 전체 발표 일정을 연기했다”고 밝혔다. 동일인은 정부가 공식 인정하는 총수(총수가 없는 그룹은 법인)로, 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기업인이다. 동일인이 바뀌면 특수관계인 범위도 달라진다. 지분 관계에 따라 공정거래법상 규제를 받는 계열사들도 달라진다.

한진은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 명의로 지난 3일 “차기 동일인을 누구로 할지에 대한 내부적인 의사 합치가 이뤄지지 않아 동일인 변경 신청을 못하고 있다”는 공문을 공정위에 보냈다. 공정위는 한진이 오는 15일까지 동일인 변경 신청을 하지 않으면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공정거래법상 지정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허위자료를 내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는다.

공정위 관계자는 “한진가(家)에 (경영권 분쟁 등)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알 수 없다”며 “한진이 동일인 변경 신청을 하지 않으면 직권으로 동일인을 지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이좋게 이끌라" 했는데…한진 경영권 분쟁?
삼남매 갈등 땐 경영권 위태

조 회장은 부친인 조양호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한 지 16일 만인 지난달 24일 예정에 없던 긴급 이사회를 통해 한진칼 회장에 올랐다. 그룹 핵심 경영진이 동일인 변경 신청과 경영 공백 우려를 이유로 조 회장의 취임을 서둘렀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선 “조 회장이 조직 장악을 위해 미리 치고 나가면서 조현아·현민 자매와 갈등을 빚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현아·현민 자매가 조 회장의 총수 지정에 반기를 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땅콩 회항’과 ‘물컵 갑질’ 탓에 경영 일선에서 퇴진한 두 자매가 한진의 동일인으로 지정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조 회장이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이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율(2.34%)은 누나 현아(2.31%), 동생 현민(2.30%)씨와 큰 차이가 없다. 조양호 회장(17.84%)의 지분을 온전히 상속받아야 그룹을 장악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현아·현민 자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2000억원대로 추산되는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한진칼 지분 일부를 처분할 경우 경영권 유지가 힘들어질 가능성도 크다. 지난 3월 말 정기 주주총회 당시 12.68%였던 KCGI의 한진칼 지분율은 14.98%까지 늘었다.

김보형/오상헌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