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년에 세금이 덜 걷힐 가능성이 있다고 2일 밝혔다.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기업의 실적 악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남기 "기업실적 악화…내년 세금 덜 걷힐 수도"
“세수 올 하반기 경기가 관건”

홍 부총리는 이날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및 한·중·일+아세안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열리는 피지 난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홍 부총리는 내년 세수 전망에 대해 “1차 점검한 결과 이전에 예상했던 것에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경기 상황에 민감한 법인세가 예상보다 덜 걷힐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 하반기 경기가 어떻게 전개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그는 “5~6월 대기업을 집중적으로 방문할 예정”이라며 “지난달 30일 삼성전자 행사장에서 이재용 부회장과도 만나자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홍 부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연례조사단이 방한했을 때 통화정책을 완화 기조로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고 말해 우회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맥주만 종량세 전환?

홍 부총리는 주세(酒稅) 개편과 관련해서는 “종량세 전환을 꼭 이번에 해야 하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맥주 소주 등 전 주종의 종량세 전환을 검토 중”이라던 입장에서 한발 물러난 것이다. 홍 부총리는 “맥주 소주 등의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서 종량세로 전환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가격 인상 동반이 불가피하다면 종량세 전환을 이번에 꼭 해야 하는지도 같이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종별로 의견 수렴이 된 곳부터 단계적으로 (종량세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주류업계에서는 “종량세 전환이 상대적으로 쉬운 맥주세 체계만 바꾸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올해 안에 종량세 전환이 힘들다는 것을 암시한 발언”이란 해석도 내놓고 있다. 현행 주세 체계는 가격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방식이다. 종량세는 술의 양이나 도수에 비례해 과세하는 것이다.

종량세 전환을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곳은 국산 맥주업계다. 종가세 체계하에서는 과세표준(세금 부과의 기준이 되는 가격)이 국산은 ‘제조원가+판매관리비+이윤’이고 외국산은 ‘수입신고가(관세 포함)’다. 수입 맥주는 판매관리비와 이윤에는 과세하지 않는 구조라 상대적으로 세금이 적다.

소주가 발목 잡나

정부가 종량세 전환에 애를 먹자 “소주값을 올리지 않겠다고 공언한 게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세는 주종별로 카테고리를 묶어 과세하는데 맥주는 단일 카테고리여서 종량세 전환이 비교적 쉽다. 반면 소주는 ‘증류주’라는 카테고리에 속해 있어 위스키 브랜디 등 다른 증류주와 과세 체계를 동일하게 해야 한다. 소주에 붙는 세금을 높이지 않으면 위스키 등 다른 증류주의 세금이 대폭 낮아진다. 증류주는 소주를 제외하면 대부분 외국산이라 ‘국산 술 역차별 논란’이 벌어질 우려가 있다.

맥주만 종량세로 전환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산 맥주 세금은 내려가지만 대부분 수입 맥주에 붙는 세금은 올라 가격이 인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비맥주(카스)와 하이트진로(참이슬) 등 국내 업체들이 주세 개편을 앞두고 가격을 올려 소비자 여론이 나빠진 것도 변수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