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적폐' 찾는다며 10억 포상 내건 원안委
경북대병원 핵의학과 의사인 A씨는 최근 병원 방사선과 앞에 붙은 ‘원전 비리 제보’ 포스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환자들은 방사선 구역이란 표시를 보고도 막연한 공포심을 갖기 마련”이라며 “평생 핵의학에 종사한 사람으로서 모멸감을 느껴 당장 뗐다”고 말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최고 10억원의 포상금을 내걸고 대대적인 원전 비리 제보자 찾기에 나서면서 잡음이 일고 있다. 원안위가 원자력계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시도라는 게 탈(脫)원전 반대 진영의 의심이다.

원안위 “원전 비리 찾겠다”

원안위는 최근 방사선 동위원소 응용기기 등을 사용하는 전국 병원 및 비파괴 검사 업체 500곳에 공문을 보내 ‘원전·방사선 비리 제보’ 포스터(사진)를 게시하도록 했다. 조만간 원자력발전소 및 관련 기업 500곳에 추가 배포할 계획이다.

국무총리 직속인 원안위는 원자력 안전과 관련한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포스터에는 ‘포상금 최고 10억원’이란 문구와 함께 핵폐기물 사진이 크게 실렸다. 병원에서 흔히 사용하는 양전자 단층촬영(PET) 장치 사진도 포함됐다.

원안위는 ‘원자력안전 신고자 등에 대한 포상금 지급 규정’에 따라 제보자에게 10억원까지 줄 수 있지만 실제 최고 포상금은 매년 1000만원 안팎에 불과했다. 작년엔 총 11명에게 20만~980만원을 지급했다.

원자력학계는 치료 목적으로 원자력을 활용하는 병원에까지 원전 비위 포스터를 게시한 건 도를 넘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전 비리가 발생한 2013년 이후 한국수력원자력도 상당한 자정 노력을 기울여 작년 청렴도 평가에서 1등급을 받았다”며 “원안위가 원자력계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려는 의도 같다”고 말했다. 원안위 측은 “원전 비리 포상금 제도는 2013년 생겼는데 그동안 제보 자체가 많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제도 활성화를 위해 포스터를 배포했다”고 설명했다.

'원전 적폐' 찾는다며 10억 포상 내건 원안委
원전 가동 급증…적자에 놀랐나

지난해 ‘예방 정비’ 명목으로 국내 원전(총 24기) 중 상당수를 장기간 멈춰 세웠던 원안위가 속속 재개 결정을 내리고 있다. 원전 가동률을 확 낮췄다가 에너지 공기업이 줄줄이 적자를 기록하자 탈원전 속도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수원에 따르면 올 1분기 원전 이용률은 75.8%로 집계됐다. 2016년 3분기(79.7%) 후 10분기 만의 최고치다. 원전 이용률은 연간 최대 발전 가능량 대비 실제 발전 비율이다.

2016년까지 80~90%에 달했던 원전 이용률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선언(2017년 6월) 직후 급락했다. 지난해 평균 이용률은 65.9%에 그쳤다. 1981년(56.3%) 후 가장 낮은 수치다. 이 영향으로 국내 11개 에너지 공기업 중 9곳이 적자를 냈다. 원자력업계 관계자는 “무작정 원전 비중을 줄이다가 공기업 적자는 물론 전기요금까지 오르게 생기자 다시 원전 가동을 늘린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